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제나 주연 Sep 16. 2020

가을볕 샤워

[유칼립투스] 나의 마음 치기


어느새 아침저녁 불어오는 찬바람 틈 사이로, 자욱이 내려앉은 안갯속으로 가을이 스며 들어왔다


아침을 먹다 말고 삐죽이 자라난 유칼립투스 모습이 눈에 거슬려 가위 들고나가 가지를 쳐버렸다. 가지치기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하고 싶었는데. 난데없이 유칼립투스 모습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고, 남과 비교하며 올라서길 바랬던 과거 나의 어리석은 모습 같아 보였다고 할까? 보통 시간이 흐르면 시간은 늘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자라게 하는데 나는 언제부턴가 어느 지점에 멈춰서 있는 것 같아 아침부터 애꿎은 식물에게 못난 짓을 했다.


높이 자라던 유칼립투스
둥글둥글 어디든 어울리는 <유칼립투스- Eucalyptus>


볕이 좋은 날 정원 정리를 한번 할까 했는데 가위를 꺼내 든 오늘 가드닝을 하기로 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을의 정원은 분주하다. 다음 해를 준비해야 하는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고 일 년 동안 정원을 디자인하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가을이다.


봄과 가을 가드닝에서 손이 많이 가는 일중 하나가 바로 데드 헤딩이다. [Dead heading] 데드 헤딩은 시든 꽃을 잘라내는 정원 관리법으로 다음 해 꽃 개화시기 영양분을 쓸 수 있도록 에너지를 모아주는 작업이다. 모든 꽃을 데드 헤딩할 필요는 없다. 일부 식물은 한줄기에서 한 번의 꽃만 피기 때문에 굳이 해줄 필요는 없다. 씨앗을 퍼트려 다음 해 새로운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일부는 씨앗을 맺도록 남겨두는 것이 좋다.


데드 헤딩은 보통 초가을에 마치는 것이 좋다. 늦은 시기 데드 헤딩을 마치게 되면 새눈이 성장할 시기 여린 상태에서 추위에 동상을 입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볕 좋은 날 서둘러 데드 헤딩과 가지치기를 마쳐야 한다. 가을정원은 그래서 분주하다.


마지막까지 정원에 피어있는 수국과 장미를 잘라 화병에 꽂았다. 드라이플라워 해두면 이쁜 라벤더와 유칼립투스도 정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정원에서 핀 꽃과 식물은 버릴 것이 없는 것 같아 대견스럽다.


마른 가지를 잘라내고, 시든 꽃을 뽑아낸다.



보라색에 시선을 빼앗고 향기에 벌이 찾아드는 <라벤더>


민트, 라벤더, 유칼립투스의 허브는 햇살과 바람을 좋아해서 토분에 심어 해가 가장 잘 드는 곳에 두어 신경을 써줘야 한다. 라벤더는 정원 벤치 곁에 두면 곁에 앉아만 있어도 향이 은은하게 퍼져 기분 전환이 된다. 낮동안 충분한 해를 받은 날은 저녁이면 거실에 들여놓는다. 라벤더의 경우, 포름알데히드 제거량이 높아 실내 들이면 공기정화에 도움이 되고, 음이온도 많이 발산하기 때문에 밤새 향기로운 신선한  실내 향을 만들어 낸다. 또 민트는 한 잎 떼어 저녁 양치전 컵에 5분 담가 양칫물로 사용하면 입안 가득 허브차를 마신 듯 청량감 돌아 천연 가글로 사용하기 좋다. 허브류는 식용과 관상용으로 두루두루 쓸 수 있어 실용성까지 높은 식물 중 하나이다. 외출을 자제하고 실내에서 생활하는 요즘 , 기능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가을볕에 두어 적응시키면 겨울 동안 천연 디퓨저로 건강하게 향을 즐길 수 있다.



아침 자욱하던 안개도 우울하던 생각들도 온데간데 사라졌다. 오늘은 볕이 너무 좋다. 볕이 좋아 여름 이불과 여름옷은 말끔하게 빨아 개켜 넣고, 여름 동안 서랍장에 넣어 두었던 두툼한 침구류와 옷을 꺼내 가을볕에 널어놓았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감정들 데드 헤딩하고, 자라나는 과거의 못난 마음의 잔가지들 하나씩 정리하며 가을볕에 나의 마음도 가을볕에 샤워 중이다. 모든 감정들은 가을처럼 지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매 맺는 계절, 가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