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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주연 Sep 05. 2020

열매 맺는 계절, 가을

[사과나무] 그래도 9월이다.


아이가 어깨에다 가방을 메고 앞장 서 걸어간다. 김한 장이나 까 싶은 크기의 등짝에 가방 얹고 걸어간다. 아이가 좋아하는 퍼플색 교복에 좋아하는 간식을 가방에 넣었더니 신이나 걸어간다.


어젯밤 난, 아이가 싫다고 돌아서면 어쩌나? 집에 간다고 떼쓰며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을 했나 보다. 늠름하게 씩씩하게 걸어가니 마음은 놓인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을까 싶게 고만했던 네살 아이가 가방을 메고 자기 사회로 걸어가는 첫날 아침이다.  




늦여름 어디쯤 와 있다 생각했는데 구월이라고 하니, 영락없는 초가을이다. 준비 없이 가을을 만난 듯하여 황스럽다. 정원에 핀 꽃 보는 사이 언제부턴가 작은 초록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가을색을 입지 않은 설익은 사과였다. 사과꽃만큼이나 단정하다.


옆집에서 넘어온 배나무 가지
정원에 맺은 사과


시골에서 자란 나로선 과일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모습이 당연하고, 아름답다기보다는 일거리로 보이니 과일 자라는 모습에 관심이 없었다. 봄이 되면 가지런히 잔가지를 제거해 주어야 하고, 꽃이 핀 자리에 열매가 맺히면 가지마다 몇 알만 두고 잘라 주어야 과일이 크게 자라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고 생각했다. 9월 뙤약볕에 고랑에 들어가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 일에 적극적이진 않아도 어깨너머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았겠다 싶어 아쉽다.


푸르게 영글었다.  여린 아이의 모습 같다.


대부분의 과일나무들은 나무를 심어 3~4년째 되는 해에 첫 수확을 한다. 사과나무도 심은지 3~5년째 되면 실수확을 하기 시작한다. 어린나무에서 자란 과일은 껍질이 부드럽고 맛나다. 사과나무도 늙지 않아야 사과가 달고 맛나다. 우리 집 사과나무도 올해 딱 4년째 되기 때문에 사과가 맛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주렁주렁 열린 사과를 보고 아이는 신기해하며 언제 먹을 수 있냐고 생각나면 묻는다. 오늘은 사과나무 가지마다 2개씩만 남기고 잘라냈다. 남겨두면 작은 사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아깝게 설익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정리를 하는 편이 낫다. 아이의 나쁜 버릇도 어릴 때 바로 잡아야 하듯 과일도 꽃이 피고 열매 맺을 때 보살펴야 한다

 


원작 [ The things that LOVE about TREES ]  영국 작가 크리스 버터워스 / 샬럿 보크의 그림
2020년 9월을 기억하며, 그림책 사이 푸른 잎 끼워 말려둔다


[내가 사랑하는 나무의 계절] 나무는 꽃을 피어 봄을 알리고, 여름엔 무성한 잎을 드리우며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맨 몸으로 추위와 싸우는 모습을 아이의 시선으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지만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고, 느린 속도로 끊임없이 변하며 모든 시간을 온전히 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린이집 첫 등교한 저녁,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며 공원에서 떨어진 잎사귀를 줍고, 떨어진 도토리를 줍고 함께 놀았던 나무를 이야기 나누며 말했다. 엄마는 지금처럼 언제나 나무처럼 친구가 될 것이고, 오늘처럼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약속된 시간에 엄마가 데리러 갈 거라 안심시키며 잠이 들었다.


그림책에서는 나무로 할수 있는 다양한 활동도 소개하는 자연지식 책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9월은 추석을 앞두고 포도와 사과, 배 같은 맛난 과일을 맛보며 신났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뉴스를 보니 올해 한국은 길어진 장마에 연이은 태풍탓에 과일이 맹탕에 과일값 마저 올라 아쉽다고 한다. 멀리 사는 나만 아쉽고 그리운 상황이 아니다. 명절을 앞두고 가족을 만나지 못해 허전하고 아쉽지만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가을이 되면 뭔가 올해 좋은 날 다 지난 것 같아 아쉬웠는데 이곳은 9월이 신학기 시작이라 가방을 메고 나서는 아이 덕분에 엄마에게도 조금의 여유가 생길 것 같아 기대된다. 아이도 사과나무도 4년쯤 되는 열매 맺고 자립하는 시기인가 보다!


설익은 사과도 차가워진 가을 공기 맞고 붉은색  띠며 익을 테고, 엄마 껌딱지 같던 아이도 자기만의 사회로 조금씩 걸어가는 9월이다.


그래도 9월이다. 


너무 빨리 뛰어가진 마라! 엄마와 천천히 같이 더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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