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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주연 Jun 09. 2020

여행의 맛, 도넛 복숭아

지금 영국은 납작 복숭아 성수기


납작 복숭아(Flat Peach) 시즌이 왔다. 영국 마트 어디에서나 탐스러운 복숭아를 만나는 순간이 바로 여름의 시작이다. 플랫 피치( Flat peach ), 도넛 피치( Donut Peach), 토성 복숭아, UFO 피치로 유럽, 미국 등에서 여행자들이 SNS에 올리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재배가 되고 있지만 서울 강남 백화점에서 시즌 잠깐 판매하는 정도로 알고 있다.


사실, 외형만 달라졌을 뿐 맛은 복숭아다. 여름에 흔히 먹던 동그란 복숭아보다 맛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여행 중 먹은 도넛 복숭아가 맛있었던 것은 '원래 복숭아는 맛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유럽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모양이 납작해 신기하고, 한 입에 쏙 배어 먹기 좋은 크기에 먹기 편하다는 장점 때문에 인기가 있지 않을까? 백도의 동그란 복숭아는 입으로 베어 먹기 쉽지 않아 과도로 잘라먹거나 베어 먹으면 과즙이 줄줄 흘러 먹을 때 조심스럽다. 그래서 백도는 잘 물러져 통조림으로 먹고, 작은 크기에 쉽게 먹을 수 있는 빨간색 천도복숭아는 털이 없는 딱따기로 자주 먹긴 하지만 신맛 때문에 뽀송한 핑크색 털 복숭아를 더 좋아한다. 




좌)인사이트 푸트 사이트  우) 그림책 오,멋진데 중에서

납작 복숭아 기사를 보며 [오, 멋진데!] 그림책이 떠올랐다. 이 그림책은 우리에게 유행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책으로 이야기 발단은 이렇다. 한 상인이 구두, 가방, 우산 등을 판매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겐 모두 있는 제품들이라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물건은 그대로인데, 물건 이름과 용도를 바꿔서 "구두 잔, 가방 모자, 양탄자 우산"이라고 외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이며 "새롭다"며 물건을 빨리 손에 넣을 생각에 가판대로 우르르 달려든다.


<오,멋진데> 원작 시크한데! 그림책의 장면

사람들의 행위는 신발에 차를 담아 마시고, 줄줄이 소시지로 줄넘기를 하고, 옷장이나 욕조에서 잠을 자고, 닭이나 청소기를 애완견처럼 끌고, 들 채에 들어간 아이가 불편해 보이는데도 이상하게도 아빠의 표정은 자부심 충만한 표정이다. 불편해도 누구 하나 이의 제기 없고, 그렇게 시작된 생활에 사람들은 점점 익숙해지고, 이제 원래의 용도로 쓰이는 물건은 찾아볼 수 없어 보였다.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남의 모습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한때 저 무리에 끼어 있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계절이 바뀌어도 나의 외모는 비수기 [슈테델미술관에서 만난 롯데 레이저스타인 전시]

달 전 한국 짐들이 코로나 때문에 영국 집에 늦게 도착했다. 이사 오기 전에는 트렁크로 짐을 옮기는 신세였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사서 쓰고 버렸다. 영국 생활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에 못 들고 온 옷과 생활용품들이 없어 아쉽고 불편했었다. 이민 가방으로 필요한 것만 가져오고 필요 없는 물건을 가져다 놓아서 그런지 한국 짐을 풀고 보니 쓸모없는 물건이 잔뜩이다. 나름 한국에서 다 버리고 온 것임에도 없는 대로 불편함이 없던 집에 갑자기 뭔가로 채워지고 곳곳에 박스가 쌓였다. 남편은 짐들 정리 안 하냐고 했지만 당장 필요하지 않으니 천천히 해야지 생각했었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여름 날씨가 되자 여름옷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한국 옷 짐을 정리하려고 보니 죄다 옷들은 몸에도 들어가지 않고, 구두는 또 왜 이리 전부 높고 작을까? 회사 다닐 때 입었던 원피스와 재킷, 구두에 입을 수 없는 것뿐었다. 아까운 마음에 옷걸이에 걸어 두고 보아도 비슷한 디자인에 어두운 옷뿐이었다. 언젠가는 입겠지 아껴 두었던 옷이기에 버리지 못하고  먼 곳까지 들고 온 것이다. 비닐도 뜯지 않은 옷이 있는 것 보니 충동구매로 샀던 옷들이었다. 신상에 유행에 필요하지 않아도 혹시 하는 마음에 산 것 들이다. 


제때 먹지 못하고 두고두고 조금씩 아껴 먹어야지 하다 물러 터진 복숭아처럼 몇 년 사이 나의 옷장은 철 지난 옷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 멋졌던 나의 재킷과 원피스는 철 지나 버렸다.





매년 복숭아 철이 돌아오면 농장에서 아빠가 직접 수확해 보내 주시던 복숭아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복숭아 빛깔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한입 배어 물면 그 과즙의 향을 캬아! 정말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복숭아가 아무리 맛있다 해도 품종마다 먹을 수 있는 기간은 고작해야 일주일도 안된다. 여름 한 철이기에 아쉽고 더 기억에 남는 달콤하고 새콤한 복숭아 맛, 그리고 아삭아삭 보들보들한 그 촉감은 여름을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과일 중 하나이다. 비록 아빠 복숭아는 먹지 못하지만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도넛 복숭아를 먹어야 할 때 놓치기 말고 맘껏 먹어야겠다. 


비싼 도넛 복숭아 몇 개 아껴 먹기보다 맛난 백도 복숭아 한 짝 사다 배불리 쓱싹! 한 철 맛나게 먹는 그게 바로 제철 과일, 맛있는 과일이다. 유럽 여행길에 맛본 도넛 복숭아 오늘 마트에서 사 먹어도 똑같은 맛이 것이다. 단, 여행의 추억 맛만 빠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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