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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주연 Jul 09. 2020

[수국 정원] 모두가 화가다


섬나라 영국은 지금 한창 수국이 피어나고 있다. 7월은 유독 비가 잦아 물을 좋아해 물꽃이라 불리는 수국이 더욱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다. 난 젊은 시절( 놀러 다니던 시절) 여름이 시작되면 수국 개화 시기에 맞춰 제주도 수국 명소를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워낙 유명해진 파란 수국을 보기 위해 혼인지를 찾아가고, 종달리, 카멜리아 힐 수국 길을 찾아 인생 사진 건진다며 돌아다녔었다. 그때 나의 인생 사진은 건지지 못하고, 이제야 우리 집 정원에 핀 수국을 직접 꺾으며 이쁘다 활짝 웃는 아이의 모습을 담아낸 사진이 바로 나의 인생 사진을 담았다. 인생 사진은 먼 곳에 그리고 특별한 곳을 찾아야 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아이의 웃음에서 꽃이 쏟아지네!

오늘도 아이와 함께 여름 정원에 핀 수국을 함께 본다. 수국을 보고 있으면 이해인 시인이 수국에 대해 [각 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 무더기로 쏟아지네]라는 표현이 기가 히게 닮아 여름 오후 정원에서 보내는 시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나도 수국을 보고 있자면 나비들이 하나씩 손잡고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는 모습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영국 정원에 핀 수국


수국이 피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흰색으로 피었다가 푸른색이나 분홍색으로 변한다. 붉은 꽃마다 빛이 다르고, 꽃 색깔이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토양마다 꽃의 색깔이 다르게 피었다. 꽃 모양이 마치 나비 사뿐히 내려앉은 것 같은 모습에 산수국이 수국의 원조, 오리지널이다. 품종 개량을 통해 산수국의 헛꽃들만 따로 모아 놓아 만든 꽃이 바로 수국이 되었다. 산수국의 헛꽃 이라고 일컫는 꽃대는 진짜 꽃의 수분을 돕고, 진짜 꽃 수정한 후 열매 맺음을 도와준다. 장식 꽃, 가짜 꽃, 들러리 꽃이라니!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아이를 보호하는 엄마 모습 같아 보여 짠한 감정이 든다.


산수국을 보고 있자면 장식 꽃은 초라해 보이지만 변주된 화려한 수국의 모습은 엄마의 화려한 독립 같아 보인다. 어디에서나 환경에 따라 적응해 나가는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변신 꽃 수국이 팔방미인 엄마 같다.



흰색 산수국
보라색 산수국




며칠 전 배우 류승범이 자신의 여자 친구 곧 아내가  친구를 소개하며, [나의 잠재력을 깨워준 사람] 그녀 덕분에 "나도 그림을 그리게 됐다. 다시 그림을 그리게 해 준 친구"라고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다. 무엇보다 화가인 여자 친구가 류승범을 다시 그림을 그리게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어릴 적 우리는 모두가 화가였다.
세상 어린이들을 봐. 모두가 그림을 그리고 있잖아? 그 아름다운 취미를 당신은 멈췄고, 나는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화가였다.
요즘 정원에서 예술의 혼을 발휘하는 중


아이에게는 붓을 쥐어주며  그림 그리기를 바라면서 아이가 '엄마도 해봐'라는 말에는 '엄마는 싫어! 못 그려!' 단호하게 붓을 잡지 않는다. 내가 가장 자신 없는 것 중 하나가 그리기다.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가기 싫은 이유도 미술 시간이 싫어서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한번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중 하나가 그림이다. 아이가 이것저것 그려달라 할 때면 손이 부끄러워지고, 정원에 핀 꽃을 보며 글과 사진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모습들을 나의 시선으로 보이는 대로 담아내고 그려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고사리 같은 아이가 붓을 잡고 색을 칠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늦지 않았구나! 내가 멈췄을 뿐인데 싶었다. 한 번도 제대로 붓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는 것이 싫었고, 그리고 싶은 것이 없었다. 산수국의 헛꽃처럼 아이가 그림 그리도록 지켜만 보지 않고, 나도 이번 기회에 어릴 적 놓아 버린 붓을 들어 보기로 했다. 나도 산수국 헛꽃으로 핀 아이 엄마가 아닌 독립적인 내가 될 것 같아서다. 류승범에게 잠재력을 깨워준 사람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함께 그림 그리는 풍경이 벌써부터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우린 어릴 적부터 화가였다, 멈춘 붓을 잡고 조금씩 그리다 보면 무엇이 그려질 것이고, 수국처럼 환경에 따라 토양에 따라 색이 변하는 것처럼 엄마도 늦지 않고 엄마의 변신의 기회를 얻을 것 같다. 나의 아이 덕분에 나도 잊고 지낸 어릴 적 붓을 잡던 시절로 돌아가 다시 잡아 본다.

 

붉은 빛 도는 수국 꽃을 그리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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