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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주연 May 18. 2020

베토벤도 봄 햇살을 좋아해

[파리 부르델 미술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아침 식사 시간 가족 셋 공통 화제가 생겼다. 며칠 전 찾아든 2마리 새 이야기다. 식탁에 눌러앉아 아침부터 바삐 뭔가를 물어 나르는 새를 보며 아침 식사 대화가 시작된다. 도대체 저 새 이름은 뭘까? 오늘은 왜 한 마리밖에 안 보이지? 새끼를 낳은 걸까? 밥을 먹다 말고 아이는 새소리를 흉내 내며 신이 난다. 그러다 어제 정원에 피지 않았던 꽃이 활짝 핀 것을 아이가 발견하고 대화가 꽃의 이야기로 바뀐다. 정원 가득 핀 장미 얘기로 아이가 열을 올린다. 자기가 좋아하는 핑크색 꽃이 오늘은 활짝 피었나 보다. 얼른 밥을 먹고 정원에 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그렇게 우리의 아침이 시작된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부르델 미술관, 그곳은 40년 넘게 앙투안 부르델이 살았던 집과 아틀리에를 시립미술관으로 개관한 곳이다. 미술관은 아틀리에 앞에 비밀을 간직한 듯 꽃과 나무, 작은 벤치로 앞뜰과 뒤뜰로 나눠진 아름다운 정원에 조화롭게 작품들이 어우러져 전시되어 있었다. 2019년 파리 여행, 그가 생애 마지막까지 사용했던 가구와 소품 등을 그대로 보존해 둔 아틀리에를 보기 위해서 찾았다. 하지만 유모차 끌고 찾아가 폴짝거리며 조각상 사이를 헤매고 다니다 사고라도 칠까 실내 전시는 포기하고 야외 정원 조각상을 보며 아이의 낮잠시간을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래 눈길이 머물러서 그런지 정원에 앉아 있는 요즘 그때의 평안함 파리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미술관 정원이 문득 떠오른다. 초록빛 싱그러운 나무들 사이로 부르델의 웅장한 역작들이 조화롭게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파리 몽파르나스역 부르델 미술관 속 작은 정원

부르델 미술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음악가 베토벤 조각상이었다. 베토벤 음악에 심취한 부르델은 80여 점에 이르는 베토벤 두상 작품을 남겼다. 40여 년간 베토벤을 오랫동안 깊이 관찰하고 사색하며 위대한 음악가의 베토벤이자 한 인간인 베토벤으로 그의 다양한 면모를 표현한 작품을 만들었다. '넥타이를 맨 베토벤' ' 바람 속의 베토벤' 등  다른 시각으로 다른 감정으로 다른 표정으로 우리가 몰랐던 베토벤의 얼굴을 만들어 냈다. 부르델 미술관에서 만난 베토벤은 고뇌 속에서 살다 간 음악가 베토벤의 모습보다 긴 전시실 창을 바라보는 그는 봄햇살 받아 환희에 찬 표정이었다. 또 미술관 2층 옥상 야외 전시실에 전시된 부르델의 흉상뿐만 아니라 다수 조각상들도 정원을 바라보며 햇살을 받아 온화하고 따사로운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였다. 일반 대형 미술관에서 볼 수 없었던 소박한 공간이었지만 웅장하고 파워풀한 작품들이 가득한 정원 속 미술관이었다.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의 얼굴] - 뒤뜰 정원을 바라 보고 있는 베토벤의 흉상


전시공간 옥상의 부르델 흉상과 그 외 조각상 - 앞뜰을 바라보는 조각상들




로나 19로 잠시 멈춤의 시간이 오랜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 시간이 잠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행복을 준다.  더듬더듬 찾아오는 기억들과 소소한 정원에서의 보내는 시간이 우리 가족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


오월, 봄의 정원은 제각기 일조량을 가늠하며, 꽃 필 시기를 정하고 하루가 다르게 여기저기 정원 가득 다채로운 꽃이 피어 난다. 봄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그 소소한 정원 손질의 몰입을 통해 조금 더 오랫동안 아이를 바라보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봄의 정원에서 아이와 꽃 밥상 나눠 먹는 기쁨이란


봄 햇살에 저 마다의 색상과 저마다의 표정을 짓는다.
오월의 장미답게 탐스럽다
꽃 차림 한상


+ 부르델이 좋아했던 베토벤 교향곡 9번

https://youtu.be/RbWmav17 O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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