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에 쓰는 2018년 이야기_20

편견 덩어리였던 탄자니아에 사는 부끄러운 외국인!

by JUNHEE

편견은 대개 아주 작은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확신이라기보다는 '그럴 것 같다'는 추측에 가깝고, 스스로도 그것이 편견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이야기를 만들어 두고, 그 이야기 안에 상대를 끼워 맞추려 한다. 그래서인지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내 안에 굳어 있던 생각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는 것 같다.

탄자니아에서 살기 시작하며 가장 먼저 느낀 건, 내가 생각보다 많은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현지 사람들 생활 방식은 이럴 것이라 짐작했고, 사람들은 독특하게 행동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시간이 흐르며 확실히 빗나갔다.


출근길의 풍경, 사무실에서 나누는 대화, 휴일을 보내는 방식까지. 내가 미리 그려두었던 모습과 실제의 간격은 생각보다 있었다. 그 간격을 확인할 때마다, 편견은 대상이 아니라 나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러운 일화가 있다. 현지 학교를 방문하며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에서 판단이 먼저 앞섰다. 우리가 지원하는 학교의 선생님들이라는 이유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기보다는 '그 지역에서 그나마 배운 사람이 맡고 있는 역할'일 것이라 짐작해 버렸다. 도움이 필요한 곳, 지원을 받는 곳이라는 틀 안에서, 그분들 역시 자연스럽게 '도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선이 얼마나 무례하고 얕은 것이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선생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였다. 수업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아이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점점 말을 잃었다. 그분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아이 한 명 한 명의 상황을 세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더 나은 수업을 고민하고,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지원받는 대상'이 아니라, 분명한 전문성을 가진 교육자 그 자체였다.


그 순간, 나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이미 선을 그어 두고 있었던 내 태도가 부끄러웠다. 그분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나의 기준으로 쉽게 재단해 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편견은 그렇게 조용히, 아무 소리 없이 상대를 지워 버린다는 걸 크게 실감했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 깨달음은 더 선명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나 다르지 않았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이유로 웃고, 같은 이유로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동안 '다를 것'이라 쉽게 단정해 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편견은 누군가를 단순화하는 동시에, 그 사람의 삶을 제대로 보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자니아에서의 시간은 결국 나를 바꾸기보다, 나를 조금 더 솔직하게 만들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른 채 안다고 생각해 왔는지, 그리고 그 무지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편견으로 이어졌는지를 인정하게 했다.


편견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것을 경계하는 태도는 배울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삶은 그렇게, 타인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나의 시선을 돌아보게 한 시간으로 남았다.

작가의 이전글2026년에 쓰는 2018년 이야기_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