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나봄 Oct 14. 2019

아이쿠 이런,
동거는 우리나라에서 금기어죠?

 우리나라엔 몇 가지 금기어가 있다. 동거, 딩크족(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고 사는 부부), 자퇴, 동성애나 양성애, 미혼모 등등. 난 이 중에서 동거에 대해 슬며시 끄적여볼까 한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보게 될 글인지라,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래서 미루고, 미뤘던 소재인데, 이젠 얘기할 때가 된 것 같다. 너무 미뤄왔기 때문에. 사실 미루는 것 자체가 나 또한 동거에 선입견이 있다는 뜻이 되니까.


 사실, 동거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아니, 조심스럽게 얘기해야지,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의견이다. 앞으로 하는 말도 다- 개인적인 의견이니, 자신의 가치관과 다르다 생각되거나 글이 불편하면 비난 대신 뒤로 가기를 눌러주길 바란다. 아무튼, 내게 동거는 ‘좋은 것’이었다. 정확히 뭐가 좋은진 모르겠지만, 좋아 보였다. 


 때는 내가 10살이었다. 대학생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그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돼서도 날 가르치셨다. 수의대를 다니셨기에 가능했다. 내가 과외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지 않았을 무렵, 한번은 선생님 자취방에서 수업을 했다. 그러다가 알게 됐다.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다는 걸. 남자친구는 이미 수의대를 졸업했고, 다른 지역에서 가축 관련 수의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의 난, 동거란 단어를 모를 때였는데, 그 둘이 참으로 예뻐 보였다. 그 둘은 결혼을 했고, 수의학과 부부답게 아프리카 정글인가 밀림인가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정말 멋진 부부라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 보기 시작한 유튜버가 있는데, ‘트위티’란 분이다. 

<유튜버 '트위티'>

 브이로그와 메이크업 영상을 주로 찍는데, 4년 만난 남자친구(결혼을 약속한)와 ‘동거 브이로그’란 제목으로 영상을 업로드 할 때가 종종 있다. 편집 과정을 거치니까 좋은 모습만 나오는 거겠지만, 그래도 예뻐 보이는 건 예뻐 보이는 거다. 그리고 사람들 댓글 반응도 좋은 편이다. 근데 결혼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비난받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난 커가면서, 동거의 좋은 점만 봐왔다. 운이 좋았던 걸까? 그래서 동거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고, 난 독신주의기에 결혼 대신 동거를 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꽤 어린 나이에.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면서, “동거할 거야!”란 말은 뱉어선 안 되는 단어란 걸 알았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오니 동거는 쉬쉬하는 단어더라. 그러다 문득, 동거가 왜 금기어인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동거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 동거의 기준이 뭔데요?


 자, 동거의 기준부터 보자. ‘우리 이제부터 동거하자’ 혹은 ‘우리 결혼 전에, 미리 같이 살아보자’라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 100% 동거지만, 내 나이 또래는 이런 경우가 흔치 않다. 보통은 애인의 집을 자주 오가다 한쪽이 다른 쪽 집에서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둘 다 자취할 경우는 더더욱. 솔직히, 왜, 이런 말도 있지 않나? “지방대 나온 여자는 거의 백 퍼센트 동거 경험 있다고 보면 돼!”라는 말. 난 들어 봤다. 남자들에게서. 뭐, 서울에 살아도 둘 다 지방 출신이면 마찬가지겠지만.


 근데, 이런 경우는 동거일까? 내 또래들의 경우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보면, A양과 B군이 있다고 가정하자. A양은 OO 빌라 2층에 살고 있고, B군은 OO 빌라 4층에 살고 있다. 둘은 cc(캠퍼스 커플)이다. 그래서 같이 등하교를 한다. 그리고 같은 건물에서 나오고, 들어간다. 주변 학생들은 이것만 보고 둘이 동거한다고 뒤에서 얘기한다. 사실 각자 집에 가는 건데. 하지만 집이 2층 차이다 보니, 아무래도 B군이 자주 A양 집에 간다. 기본적으로 저녁은 매일 A양 집에서 함께 먹는 편이고, 최소 일주일에 3회 이상 자고 가는 듯하다. 그럼 이건, 동거인가? 그냥 자주 보는 것인가? 꼭 동거하지 않아도 시간이 많은 방학 때면, 일주일에 2-3회 정도는 애인의 집에서 자는 사람도 많다. 회사원도 주말에만 만난다고 치면 금~일 이렇게 보기에 2박을 같이 하는 경우도 많고. 만일 A양이나 B군은 나중에 동거 경험이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마치, 바람의 기준을 정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위의 사례는 헤어져도 각자 집이 있어서 돌아갈 곳은 있으니까 다행인 경우이다. 하지만, 한쪽이 자신의 거처를 없앤다면? 여기 C양과 D군이 있다. D군은 기숙사에 살고, C양은 자취한다. D군은 여자친구가 너무 좋아서 매일 보고 싶은 나머지 날마다 C양의 집에 갔다. 참, 좋을 때, 서로 죽고 못 살 때 말이다. 자연스럽게 D군의 물건들이 하나둘씩 C양의 집에 생기기 시작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D군은 가끔 C양의 집에서 자고 가곤 했다. 결국엔 C양 집에 D군의 속옷 여벌, 면도기, 잠옷, 칫솔, 왁스 등등, 마치 같이 사는 것처럼 물건들이 그녀의 집에 스며들었다. 그렇다고 둘이 C양의 공과금을 나눠서 내는 것도 아니고, 월세를 같이 내는 것도 아닌데, 이건 동거일까? 동거라면 동거겠지만, 사실 난, 잘.. 모르겠다.



#. 동거=아이 라고요?


 동거하겠다고 했을 때, 제일 많이 듣던 말이다. 근데, 음, 글쎄…. 그럼, 동거하지 않은 커플들은 혼전임신이 없는 걸까? 같이 살게 됐다고 해서 매번 하던 피임을 갑자기 하지 않게 되는 걸까? 아이의 문제는, 동거의 문제와 별개다. 그들이 얼마나 피임에 철저한지에 따라 다른 거지. 피임을 제대로 안 하는 연인은 모텔에서 대실을 빌려도 임신한다. 내 측근은 딱 한 번, 정말 딱 한 번의 잠자리에서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를 했다. 피임은 남자 쪽에서 했고. 아 낙태도 금기어지 참. 우리나란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직 그대로다. 쿨한 척하는 것뿐이다. 실은 아직도 보수적이며 임신과 낙태에 관해선 여자를 더 질책한다. 참으로 억울하다, 임신이란 것. 내 또 다른 지인은 4년간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가지면서 피임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생리 주기를 계산하고, 남자가 질외사정을 하는 것으로 4년을 만났고 임신은 없었다. 난 난임이나 불임인가 싶었다. 근데 결혼하더니 아이가 바로 생기더라. 

손가락질과 비난

 물론, 동거하면 잠자리 횟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으니 임신 가능성 또한 높아질 수 있다. 굳이 상관관계를 만들자면 이렇다는 거다. 근데 이게 모든 연인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아직 동거하진 않았지만(동거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남자가 피임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나도 피임약을 먹는다. 약국에서 사도 되지만, 산부인과 가서 매달 처방받는다. 피임은 남자 하기 나름이고, 여자 하기 나름이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는 거고, 동거는 이와 별개의 문제다. 


 동거했던 경험이 나중에 결혼할 때 흠으로 남는다? 그리고 동거하면 끝이 안 좋게 끝난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흠이 되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그렇다고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숨길 일도 아니라 생각한다. 끝이 안 좋게 끝나는 건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헤어짐을 어느 정도는 대비해 놔야 한다. 사전에. 근데 동거를 안 한다고 해서 과연 끝이 좋게 끝날까? 


 서론에서도 언급했지만, 난 동거에서 결혼으로 이어진 예쁜 커플들이 많이 봤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소위 말하는, 천박하거나 머리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똑똑하고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들의 동거를. 그리고 한 사람과 같이 살 땐(결혼), 미리 동거해보는 게 나은 것 같다. 실제로 살아보면 너무나 다르니까. 이런 점에선 미국의 문화 일부가 부럽다. 미드 ‘프렌즈’에서 자주 나왔는데, 서로 사귀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싶은 사이가 되면, 자신의 집 열쇠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더 깊은 사이가 되면 동거를 하자고 한다. 이게 당연하단 듯, 일종의 절차처럼, 그들은 연애한다. 



#. 저 동거할 건데요생각 없이 무작정은 아니고.


 아유, 날 뭐로 보고. 난 동거하면 생각 없이 무작정 하지 않을 거다. 동거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렵다. 그렇기에 동거를 생각하는 커플들이 있다면, 자신들만의 규칙을 꼭 만들기 바란다. 헤어지고 난 후의 일도 대비해 놓고. 헤어짐을 생각하고 동거한다는 게 모순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선 동거와 집에 자주 오는 것을 구분하는 게 먼저다. 근데 이게 제일 어렵다. 동거는 너무 자연스럽게 스르륵 되니깐. 자주 집에 드나들다 보면 상대의 물건이 내 집에 있게 되니까! 나만 해도, 지금 애인과 천일을 만났지만, ‘동거’와 ‘자주 집에 오는’ 것 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두려고 노력한다. 각자의 화장품이 서로의 집에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포기했다. 이건 내가 불편해서. 그렇다면 내가 차이를 두려는 포인트는 무엇이냐 물으면 ‘노크나 초인종’이다. 내 애인은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안다. 그래서 서프라이즈 이벤트나 회사가 일찍 끝났을 때 말없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난 이럴 때마다 애인에게 확실히 선을 그었다. “내가 아프거나 내 반려동물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급하게 당신의 차가 필요한 경우 외에는 말없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이곳은 ‘내 집’이란 영역표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일종의 이런 뜻이다. ‘우린 서로 집에 편하게 드나드는 사이지만, 엄연히 여긴 나의 공간이고, 난 나만의 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고, 당신이 말없이 찾아와서 날 당황시키는 건 매너가 아니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건 동거를 하지 않는 한 자제해 달라.’ 우린 ‘같이 사는’ 게 아니니까. 여긴 공동 영역이 아니니까.


 아마 내가 동거를 한다면, 상대방 부모님의 유형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동거의 ‘동’자도 꺼내면 안 되는 부모님이라면 상대방과 많은 논의를 하여 결정할 것 같고, 내 부모님처럼 괜찮다는 쪽이면 우리끼리의 룰을 만들어서 스피드하게 진행될 것 같다. 아, 우리 부모님은 무조건 찬성은 아닌데, 그렇다고 반대하진 않으신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말했기 때문도 있지만, 당신들이 믿는 딸이 사랑하는 남자니까 그 남자 또한 믿는다고 생각하시기에. 


 여기서, 우리끼리의 규칙은 무엇이냐 하면, 간단하다. 금전적인 부분과 각자의 시간을 갖는 부분. 이건 연인마다 다르겠지만, 나와 내 애인은 완벽한 집돌이다. 그래서 우리가 밖에서 데이트하는 게 아니라면, 계속 집에만 있다. 애인이 회사에 다니니까 평일엔 자주 못 보는데, 나나 애인이나 평일에 친구와의 약속은 없다. 그저 집이다. 우린 술도 마시지 않는다. 못 마시기보다 좋아하질 않는다. 그리고 난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첫 연애를 했을 때부터 더치페이를 해왔기에 예민하다. 내 애인은 TV를 보지 않지만, 난 TV를 달고 산다. 그리고 난 반려묘가 2마리 있고, 내가 너무 감정적이라서 나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내 애인은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것을 절대! 조금이라도! 들키지 않고 싶어 한다.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도록 열심히 노래를 틀고, 수돗물을 튼다. 지금 우리 집은 방음이 잘되는 투룸. 그래서 애인의 화장실 프라이버시가 잘 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어떤 타협을 볼까? 애인이 회사에 가 있을 동안 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집은 화장실이 2개인 우리 집으로 한다. 공과금과 월세는 딱 절반으로 나눠 낸다. 같이 시켜 먹는 음식이 있다면 평소처럼 돈을 내고, 각자 사 온 생활용품은 각자의 돈으로 낸다. 이외에 나머지 부분은 평소에 집에서 데이트할 때와 같다. 그리고 서로 집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습관은 알고 있으니 패스. 자, 이제 피임과 각자 휴식 시간의 문제,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의 문제가 남았다. 피임은 하던 대로 하면 되고, 휴식 시간과 헤어지고 나서의 문제는 많은 대화를 해 봐야겠지. 이런 것들이 정해지고 난 후에야 난 동거를 할 생각이다. 




 위의 얘기는 어디까지나 철저히 나만의 경우일 뿐, 답은 없다. 동거에 관한 기준부터가 사람마다 다른데 어떻게, 내가 뭐라고, 이 글에서 답을 내리겠는가. 이 글이 아닌, 내 지인에게 해주는 말이라면 달라지겠지만. 그저 동거에 대한 일련의 생각들을 한 여자이자 대한민국 국민으로 적어본 거다. 


 동거, 절대 쉽지 않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는데 어떻게 쉬울 수가 있을까. 그러니 어려운 만큼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죄지은 사람처럼 쉬쉬할 필요까진 없다. 결혼에 대한 환상을 미리 깨버리는 것 또한 일종의 경험이고 사랑하는 이와 매일 함께 하는 것만큼 행복한 것 또한 없으니.


작가의 이전글 만들어지는 사이코패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