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가 오는 3시간은 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시간이다. 24시간 남편의 간병을 하게 된 이후로 마음껏 시장 한 번을 나가기가 어려워졌다. 마트에 가서 입적 거리 한두 가지 사러 잠시 나갔다 온 사이 휠체어에서 앞으로 고꾸라져 이마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누워있던 날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다 마룻바닥에 머리를 박고 꼼작도 못 하고 있는 남편을 본 이후로 나는 한 순간도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들어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면 되는데 왜 일어나려고 해서 이 난리를 치는 거야...”
“조금만 힘을 주면 혼자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다리가 내 맘대로 움직이질 않았어...”
“왜 일어나려고 했는데. 화장실 가고 싶었어? 조금만 참지...”
“아니... 그냥 혼자 걸을 수 있는지...”
엄마한테 혼나는 아이처럼 목을 길게 빼고 상심해 있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내가 다쳤으면 걱정하고 위로해 줘야지 왜 소리를 지르느냐’고 차라리 화를 내면 좋겠는데 남편은 양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미안해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집 붙박이가 되었다. 남편의 몸이 파킨슨에게 묶여갈수록 내 몸이 갇히고 내 마음도 갇혀갔다.
결국 하루 3시간씩 남편을 돌봐줄 요양보호사를 만나게 되었다. 내 집에 낯선 이를 들이는 것이 좀처럼 결심되지 않았는데 몸이 죽을 것 같으니 별수 없었다. 60대 초반쯤 되는,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 요양보호사는 회사에 다니다 퇴직하고 자격증을 받았다고 했다. 친절하고 참 싹싹했다. 하지만 요양보호사에게 남편을 맡긴 채 외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처음엔 딱 한 시간 동네 산책을 했다. 그다음엔 두 시간쯤 카페에 가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왔다. 살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씩 길어져 꼬박 세 시간의 자유 시간을 즐기는 데 한 달쯤 걸린 것 같다.
딸아이가 동네 이곳 저곳을 배회하지 말고 매일 출근하듯 제 사무실에 와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미뤄두었던 글을 쓰면 더 좋겠다고. 나는 신이 났다. 딸애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으려 눈치를 보는 것마저 행복해하며 매일 출근을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다. 며칠이 지나자 남편과 집안을 맡기고 나와도 불안하지 않았고 책을 읽는 동안엔 잠시 남편을 잊기도 했다. <레 미제라블>영화를 보던 날이었다. 영화가 끝나려면 시간이 좀 남았는데 요양보호사가 퇴근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딱 30분만 기다려주면 끝까지 보고 갈 것 같아서 전화했더니 시간 맞춰 퇴근을 해야 한다며 곤란한 소리를 했다.
“할아버지가 식사도 잘하시고 화장실도 다녀오셨으니 제가 휠체어에 앉혀드리고 뉴스 틀어드리고 갈게요. 사모님 도착하실 때까지 일어나지 마시라고 당부하고 갈게요.”
“네, 그럼 우리 집 양반한테 30분만 기다리면 제가 올 거라고 꼭 전해주세요.”
30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영화의 마무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집까지 가는 길이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걸음인 듯했다. 그냥 30분 먼저 일어나서 올 것을.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에 신발을 벗어 던지며 남편을 불렀다.
“여보, 나 왔어. 늦어서 미안해.” TV가 켜져 있는 거실에 남편이 보이질 않는다. “여보, 여보..”
부엌 식탁 옆에 앞으로 쓰러진 휠체어 그리고 그 밑에 깔려서 꼼작도 못 하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현기증이 났지만 남편을 일으켜야 했다. “여보, 여기 식탁을 우선 잡아요. 그리고 한 다리씩 힘을 줘 봐요.” 넘어지면서 어디에 부딪혔는지 콧등이 벌겋게 부어 올라있었다.
“여보...” 눈물이 나왔다. 우선 휠체어를 들어 올렸다. 목덜미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오늘도 혼자 걸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응... 그런데 안 되네....”
난 남편과 이 곤경을 함께 헤쳐 나갈 것이다. 하루하루 희망이 없어지는 기분이 들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30분을 못 기다린 남편에게 이해를 구할 것이다. 그 시간을 기다려줘야 우리가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다고.
<레 미제라블>에서 주인공이 불렀던 ‘I dreamed a dream’이 환청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