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 어깨를 잡고 조금만 버텨 봐요. 소변 보고 누워야지, 안 그러면 자다가 힘들어서 안돼요. 아이 진짜, 이렇게 주저앉으면 내가 어떻게 옷을 올려줘요”
남편의 잠자리를 봐 주는 것은 젖 먹던 힘까지 다 내봐도 정말 힘들다. 아침에 일으키는 것은 요양보호사가 와서 해 주지만 저녁은 어쩔 수 없이 내 차지다 보니, 힘을 쓰다 쓰다 나도 모르게 힘듦을 토해내느라 혼잣말을 뱉어낼 때가 많다.
저녁식사를 하고 휠체어에 앉아 함께 뉴스를 보던 남편이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다. 요양원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자꾸 늘어난다는 뉴스가 한창이다. 뉴스가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좀 쉬고 싶어서 남편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TV 화면 속으로 남편이 살짝 비추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기울어진 몸이 휠체어 밖으로 떨어질 판이다. 목과 허리가 옆으로 꺾여 휠체어 밖으로 나가면 더 버틸 수 없다. 이제는 일으켜 침대에 눕혀야 한다. 또 한판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늘어진 남편의 팔을 내 어깨에 올려놓고 허리를 감싸 안고 들어 올려 본다. 꼼짝을 하지 않는다. 아이씨. 남편을 흔들어 깨워서 두 손을 잡고 두 발은 남편의 발가락을 살짝 밟아 지지하며 앞으로 당겨 본다. 손 아귀의 힘이 빠지면서 내가 뒤로 벌러덩 넘어갈 판이다. 다시 남편을 끌어안고 양손으로 바지 뒤춤을 힘껏 잡아당겼다. 남편의 거대한 몸은 내 온몸이 땀범벅이 된 후에야 휠체어에서 일으켜졌고, 양손을 맞잡은 우리는 위태롭게 침대 곁으로 왔다. 이제 잠자리용 기저귀를 채워야 한다. 진짜 아이씨.
“여보, 다리에 힘을 주고 잠깐만 서 봐요. 자꾸 주저앉으면 내가 기저귀를 어떻게 채워요.”
“여보... 정말 조금만 버텨 봐요. 이 찍찍이를 붙여야지. 그냥 누우면 어떻게 해”
“정말 당신 이러기야. 내가 이렇게 힘든데 조금만 도와주면 안 돼? 자꾸 허리를 굽히면 내가 앞이 안 보이잖아”
허리가 동그랗게 말려 구부러진 남편의 몸통이 내 어깨를 타고 넘어간다. 힘없이 꺾여 주저앉는 남편의 몸무게가 내 정수리를 짓눌러 방바닥을 뚫고 들어갈 것만 같다. 펄럭이는 남편의 잠옷 앞자락이 얼굴을 뒤덮어 앞은 안 보이지만, 더듬더듬 기저귀를 채우고 찍찍이 스티커도 겨우 붙였다. 아이씨 이놈의 기저귀는 더 편하게 못 만드나 싶다가, 내 이마에 닿은 남편의 앙상한 가슴팍이 안쓰럽다. 12쌍의 갈비뼈가 그대로 내 이마와 정수리에 닿았는데 마치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남편의 폐와 심장 그리고 내가 그 안에 같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싶었던 뜨거웠던 날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여보, 이렇게 내가 매일 씻기고 입히고 눕히고 일으키고 해주니까 고맙지? 만약에 나 없으면 당신 어떻게 할 거야?”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려고 농담을 던졌다.
“아이씨 안 하는 좋은 사람 구하면 되지....”
나 없으면 못 산다느니, 당신은 내 수호천사라느니 같은 말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아이씨 안 하는 좋은 사람 구하면 된다니.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어찔했다.
“뭐라고? 이 양반이 진짜....” 남편의 뒷머리를 받히고 있던 손을 그냥 홱 빼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베개에 편하게 머리 위치를 잡아주고 이불도 덮어주고 불을 끄며 뒤돌아서는데,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소리가 웅얼웅얼 들렸다. “나한테 뭐라고 했어?”
“아이씨 대장,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