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경험 기억
이번 주 질문은 지금까지의 질문들과 결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제가 진심으로 궁금한 주제여서 가져왔어요ㅎㅎ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산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빠한테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 어떤 순간이었는지 궁금해요.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이어도 좋고, 가족이 생겼을 때도 좋고, 최근도 좋고 다~ 좋아요!
가끔씩 떠올리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그런 순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한희가 궁금한 ‘아빠가 가진 순간의 기억’이 이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희 질문을 듣고 떠오른 순간은 이 사진 속 시간이야. 아빠 인생의 방향이 바뀌던,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지.
서울에서 혼자 유학생활을 하던 아빠가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던 부산으로 내려가서 재수하던 시절이야.
당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파트 공사장에서 함바식당(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이용하는 현장 식당)을 하시던 때라 공사 현장 한켠의 식당 건물에서 함께 지내셨었어.
할아버지께서 아빠가 공부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시니, 공사장 삼촌들이 공사 자재를 활용해서 만들어 주신 공부방이 바로 이 사진 속 방이야. 앉은뱅이 책상 하나 있던 한 평 남짓한 방이었는데, 이 방에서의 1년이 한희가 묻는 그 순간인 것 같아.
살다가 힘들 때 이 방에서 생활했던 시간을 많이 떠올려. 돌이켜보면, 참 힘든 시기였거든.
그런데 그 시기가 아빠의 이후 삶에 아주 큰 긍정적 영향을 미쳤어. 그때는 정말 처음으로, ‘죽기 살기로 무언가에 몰입했던 시기’였고, 그 덕분에 바라던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었거든.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거든. 주말에는 식당 일도 도우면서, 그때까지 아빠 인생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게 몰입하며 지냈던 시기였을 거야.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서 심리적으로도 힘들었을 때이고, 재수 준비를 하기에 마뜩잖은 환경이기도 했지만 그 시간을 잘 이겨내고 원하던 결과를 만들었던 과정에서의 힘을 기억하는 것 같아. 아빠가 기억하는 이 과정에서의 힘이 이후 아빠의 삶에서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기도 해.
물론, 사람은 한순간의 기억만으로 살아가진 않아. 하지만 좋은 경험과 기억이 삶의 힘이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쓰신 행복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었어. ‘행복은 생각이 아니고 경험이다.’라고. 여기서 말하는 ‘경험’이 한희가 말한 ‘삶의 원동력이 되는 순간’일 거야. 그래서 삶 안에 좋은 경험을 쌓아두는 게, 결국 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는 것 같아.
아빠는 '모든 경험은 다 좋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 힘들고 아팠던 일도 배움으로 변해서 나에게 남으면 그 일은 좋은 경험이지 않나 싶거든. 물론, 때로 감당하기 힘든 일들로 인해 배움이 아닌 트라우마로 나에게 남는 일들은 예외일 거고.
그래서 아빠는 ‘계획된 우연’이라는 개념을 참 좋아해. 존 크롬볼츠라는 심리학자가 제안한 ‘계획된 우연’이라는 개념은 ‘예상치 못한 우연을, 마치 계획했던 일처럼 나의 배움으로 전환시키는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어.
우리 삶에는 ‘예상치 못한 우연한 기회’가 참 많아. 이 기회들은 보통의 경우 나에게 무의미하기 쉽지. 때로는 나에게 부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하지만 ‘계획된 우연’에서 말하는 '나의 것으로 만드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그 기회를 나의 배움으로, 나를 확장시키는 경험으로, 마치 의도했던 것처럼 나의 것으로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경험은 다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싶은 거지.
한희가 말한 ‘그 순간’들을 앞으로도 많이 만나길, 그래서 그 순간들이 한희 삶의 힘이 되어주길 아빠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