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의 대학원 생활
아빠는 대학원 생활이 어떠세요? 저는 아직 모든 상황이 낯설고 어색한 중인데요, 선배들을 보면 좀비 같아 보이는 경우도 있고 해서 앞으로의 대학원 생활이 어떨지 궁금하고 걱정돼요.
연구하고 논문 쓰는 과정에서 아빠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스트레스가 무엇이고 그런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시는지 궁금해요.
주변에서 왜 아빠에게 섣불리 박사과정 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는지 절실히 느끼면서 박사과정을 견디고 이겨내고 있는 중이란다. 무언가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
대학원 생활 초반에는 용어랑 개념이 낯설어서 정말 힘들었어.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우리가 배우는 심리학이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학문이다 보니까, 한국어로 번역된 그들의 용어가 처음에 이해가 안 되고 머리에 안 들어와서 어려웠었어. 용어에 대한 이해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는데, 개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더라고. 개념이 이해되는 그 시간 동안은 외계어를 계속 보는 느낌이라 꽤 힘들었었지. 아무래도 빠르게 사고하고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아. 그래도 이제는 용어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학술적 용어(terminology)와 개념들에 대한 이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어.
지금 시점에서 가장 힘든 건 아빠의 연구주제를 뒷받침한 근거를 찾아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인 것 같아. 마치 큰 나무의 뿌리 저 깊은 곳까지 파내야 하듯이, 집중력 있게 파고 들어서 관련 연구를 찾고 근거를 확인해야 하는데, 일도 하고 공부도 해야하다 보니까 집중력을 투자할 시간을 확보하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
그래서 집중할 수 있는 저녁 늦은 시간을 많이 활용하고 있긴 하거든. 처음에는 공부 체력이 없어서 한 시간 집중하기도 어려웠었는데, 지금은 일 마친 피곤한 저녁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서너 시간씩은 집중할 수 있는 공부근육이 좀 생긴 것 같아.
집중력이 안 생겨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트레스가 제법 있었거든. 그런데, 학습코칭 기법을 아빠 스스로한테 적용하면서 지금은 극복한 상태야. 50분 타이머를 맞춰두고 50분 동안은 핸드폰 알람도 꺼두고 논문 읽기를 했거든. 노트북으로 논문을 보면 옆에 열려있는 유튜브로 손이 자꾸 가고 하던 문제도, 태블릿으로 논문 읽기로 바꾸면서 해결했고. 그랬더니 집중력이 조금씩 좋아지더라고.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것 같아.
일이랑 공부랑 같이 하니까 시간이 부족하고, 그 때문에 잠이 좀 부족하고, 그래서 피곤한 상태이긴 하지만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는 쾌감도 제법 있는 것 같아. 내 안에 무언가가 쌓여간다는 느낌도 짜릿하고. 우리는 조금씩의 변화를 잘 인지 못하잖아.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인 것들이 있음이 확인되는 순간들이 있더라고. 예를 들면,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모두 다 알아듣겠고, 거기에 답할 수 있게 된 내가 발견되는 그런 순간을 경험하면, ‘아,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 공부 제대로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만족스럽더라고.
그래서 큰 스트레스는 없는 편이야.
아.. 일이랑 공부에 쓰는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틈새를 이용해서 아빠에게 주는 보상시스템을 잘 만들어두어서 스트레스가 적은 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시간은 아빠를 위해 쓰려고 하거든. 점심 먹고 잠시 소파에 기대서 음악을 듣거나, 미뤄뒀던 드라마를 보거나 하면서 열심히 보낸 시간에 대한 보상을 아빠 스스로에게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그게 견디고 이겨내는 과정에 꽤 큰 힘이 되더라고.
한희 질문에 답을 쓰다 보니까, 아빠가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가, 뭔가 계속 성장하고 있어서 뿌듯한 느낌도 들었다가.. 그러네. 그런데, 이 양가감정 중에서도 뿌듯한 감정이 더 큰 것 같아. 무엇보다 아빠가 하고 싶어서 한 선택이라 그렇겠지.
전문가로 가는 길인 대학원 생활이 만만하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한희는 전문가로 성장하는 경험을 이미 한번 해봤잖아. 프로가 되기 위해서 투자한 시간과 정성, 그때의 집중, 체력, 태도가 몸에 남아 있을 거야. 그래서 아빠보다는 훨씬 더 잘 해낼 것 같아. 아직은 조금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잘할 거야.
아빠가 선배로서 도움이 될 수 있게 할 테니까 언제든 이야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