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가 당첨되었다... 면

나는 행운을 누릴 준비가 되어있나? 나는 불운을 이길 준비가 되어있나?

by 최용

이번 주 한희의 질문은, ‘만약 지금 당장 로또에 당첨된다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이다.

한희는 뭐 하고 싶은지를 물으니, 우선 스위스행 비행기표를 사서 스위스 가서 거기서 고민해보겠다고 한다. 버킷리스트에 있는 여행지 중 제일 상단에 스위스가 있다면서 그렇게 대답한다. 기특하고 현명한 딸이다.


한희의 질문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 보자. 이번 주 토요일 로또 15억이 당첨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먼저 아이들 집을 해결해주고 싶다. 집 없이 서울살이 하는 아이들의 부담을 먼저 덜어주고 싶다.


또 다른 꿈도 꿔본다.

옛날부터 꿈꾸던 공간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싶다. 1층에는 서점이 있고, 2층에는 코칭룸이 있는 조그만 공간을 꾸리고 싶다. 요즘은 아내가 꽃 만드는 일을 하니까 서점 한 켠에 꽃집도 같이 있으면 좋겠다 싶다.


집사람과 나는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 있던 사회과학서점, 장백서점에서 만났다.

나는 시급 천 원에 점심 제공받는 알바생이었고, 집사람은 서점 주인의 막내 여동생이었다. 학생시위가 있던 날에는 전경이 들이닥칠까 봐 셔터를 내리고, 때때로 학생들을 숨겨주던 기억이 있다. 학생들에게 준 외상이 많아서 출판사에서 수금하러 오면 며칠만 수금을 미뤄달라 부탁했던 일도 기억난다. 그렇게 학생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장백서점은 시대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지 한참 되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가장 큰 추억과 선물로 남아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우리 부부는 서점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로망과 목표가 있다. 수익이 크게 나지 않아도 괜찮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한희의 질문 덕분에 그 꿈이 다시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래, 로또 되면 바로 이 공간을 만들자. 아니 로또가 안되어도 언젠가는 꼭 만들자. 한희 질문에 다시 내 맘에 로망과 목표가 피어난다.


여기서 문득, 한희에게 되묻고 싶은 질문이 생겼다. 한희는 만약에 15억 사기를 당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행복한 상상에 재 뿌리는 것일래나? 어차피 현실적으로 15억 로또를 맞을 확률도, 15억 사기를 당할 확률도 우리에게는 거의 없다. 그냥 상상해 보는 것이다.


나는 행운을 누릴 준비가 되어있나? 나는 불운을 이길 준비가 되어있나?

결국 같은 질문이다. 로또든 사기든, ‘크게 들어오는 것’을 받아낼 힘이 내 안에 있는가를 묻는 일이다.


만약 내가 15억 사기를 당한다면? 아마 며칠간은 화와 불안이 뒤섞여 서 있기조차 힘들 것이다. 그 시간을 지나 조금 진정되면, 내가 가진 역량과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대안을 찾을 것이다. 방향이 잡히면 플랜을 세우고, 그 플랜을 견딜 체력과 멘털을 마련하려고 할 것이다. 지치고 흔들릴 때는 주변의 지지도 잘 받으면서, 그렇게 긴 시간을 버텨낼 것이다.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내가 누릴 수 있는 행운과 내가 감당해야 할 불운이 같은 무게로 나에게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런 상상을 더해보았지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조금씩 모아서 서점 만들련다. 하루하루 모아 15억을 채워가는 편이, 마이너스 15억을 메우는 것보다 백배는 건강할 것이다.


예전 글에서도 적었던 에피소드인데, 만우절 이벤트로 밝혀져서 허망하긴 했지만 20대 후반에 아내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더랬다. ‘즉석복권 당첨되면 뭐 하고 싶어?’라는 당시 아내의 질문에 나는, 내가 가진 것과 갖고 싶은 것에 집중해서 생각을 정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한희에게 질문받고 답을 정리하는 50대 후반의 나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거나 무릎 꿇기보다는 주어진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나를 먼저 돌아보는 것 같다.


50대 후반의 내가 가진 이런 사고 전개방식이 20대 중반의 딸에게 유효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도 있구나라고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만이라도 하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 가득한 상상을 하면서 로또 사러 가야겠다.

불운 가득할 수도 있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오늘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