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이상형

자신의 현실과 성장을 꾸준히, 적절하게 자극하는 사람

by 최용

독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Kleine Kinder, kleine Sorgen - Große Kinder, große Sorgen.’

직역하면, ‘작은 아이는 작은 걱정 - 큰 아이는 큰 걱정’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걱정거리도 작지만, 아이가 성장할수록 그 걱정 역시 함께 커진다는 뜻이다.


먼 나라 독일의 옛 속담에도 ‘걱정(Sorgen)’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걸 보면, ‘응원하는 존재이기보다는 걱정하는 존재’로서의 부모의 모습은 래전부터, 그리고 문화권을 넘어 보편적으로 이어져 온 모습인가 보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걱정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초보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애가 말이라도 할 수 있게 되면 훨씬 좋을 텐데.’, ‘혼자 대소변만 가려도 얼마나 편할까?’, ‘초등학교만 입학해도 사람 같겠지?’, ‘학교에서 왕따 안 당하고 아이들과 잘 지내야 할 텐데.’, ‘사춘기를 잘 넘겨야 할 텐데.’, ‘좋은 대학 가야 할 텐데.’ 등등 발달 단계별로 끊임없는 걱정이 이어졌다. 이 시기만 무사히 넘기면 괜찮아질 거라 믿으며 가졌던 걱정과 기대는, 그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또 다른 단계의 걱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녀에 대한 걱정과 기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커져갔다. 앞서 말한 독일 속담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한희가 방학했다고 춘천집에 왔다.

대학원 생활이 힘든 것인지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다. 치아교정도 끝나가는 데다가, 살도 빠진 데다가, 한창 이뻐질 나이이기도 해서인지 미모(?)에 물이 올랐다. 뭇 남성들의 대시가 이어진다고 한다. 자존감이 무척 올라간 모습이다. 20대라는 시기에는 외모가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도 크니, 그런 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뻐졌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시하는 남자들이 많아졌다는 지점에서 부모의 걱정이 다시 작동했다. ‘혹시라도 이상한 놈 만나면 어쩌지’라는 걱정말이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선과 지혜를 우리 딸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인 거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기에, 원가족에 대해서는 선택권이 없다. 그냥 주어진 것이다. 반면, 배우자와 그 이후에 구성할 가족에 대한 선택권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아주 소중한 선택권이다. 그래서 이 선택권을 귀하게 사용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인 거다.


한희는 어떤 남자가 이상형인지 궁금했다. 한희는 자신을 꾸준히 자극하는 사람이 좋다고 한다. 자신의 현실과 성장을 적절하게 자극하는 남자가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부모로서 딸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도 질문이 생긴다. 답은 없다. 아니, 답을 가지고 있어도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 그대로 스스로의 선택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만난 후배가 고등학생인 딸이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너무 걱정이 된다며 하소연을 했었다. 개방적인 성향의 그 후배가 딸의 연애 자체를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라는 걱정이었다. ‘네가 아이를 잘 키운 만큼 그 아이가 만나는 이성 친구도 잘 자란 친구이지 않을까?’라며 말을 더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야기를 스스로에게도 해본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사랑을 할 줄 안다. 내 아이가 좋은 사랑을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보다는, 내가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자. 그리고 내 아이가 사랑받은 만큼 좋은 사랑을 하는 법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응원을 하자. 그 편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걱정보다는 응원을 선택하려고 한다.

한창 꽃다운 나이. 사랑도 이쁘게, 멋지게. 그래서 삶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경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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