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효능감이 주는 선택지

딸아이의 졸업을 축하하며..

by 최용

한희가 졸업을 했다.

사실 한 학기 이르게 조기 졸업을 해서 지난 8월이 졸업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이번 2월에 졸업식을 치렀다. 수석졸업이라는 뜻깊은 결과도 함께 안았다. 덕분에 아주 풍성한 졸업식이었다.


오랜만에 온 식구가 모여 축하 저녁을 하던 중, 나는 한희에게 물었다.
“운동하면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열심히 하게 만든 동력은 뭐였어?”


한희는 웃으며 답했다.
“제 앞에 아무도 없길 바랐던 것 같아요. 1학년 때 과에서 1등을 했는데, 한번 해보니 그걸 놓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남들과 다른 졸업장을 받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오늘 받은 졸업장처럼, 수석 하면 졸업장에 우등이라고 써주고 표창장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학습 장면에서 흔히 나타나는 '경쟁'은 '외부 평가와 비교'에 기반한 동기로 작동하기 쉽다. 자칫하면 통제적 동기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희는 그 경쟁을 단순한 비교의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 지키고 싶은 성취'로 받아들인 듯 보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차별화된 결과물에 대한 욕구도 있었던 것 같다.


“골프도 경쟁이잖아. 골프에서도 그랬었니?”
내가 묻자, 골프 시합에서도 제 앞에 아무도 없길 바랐던 마음은 같았지만 이기기 어려운 상대가 많았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컸다고 덧붙였다. 프로 자격증을 딸 때까지는 어떻게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그 이후의 시합에서는 에너지가 잘 나지 않았다고 했다.


골프에서는 반복적인 좌절 경험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조금씩 흔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승과 같은 한 번의 '명확한 성취 경험'은 이후 도전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곤 한다. 하지만 한희는 그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어려워했던 듯하다.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감각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희는 골프에서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던 그 ‘확실한 성취 경험’을 학교에서의 학업 성취를 통해 얻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경험이 다시 자기 확신을 강화시켰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한동안 한희가 계속 선수로 투어를 뛰어주길 바랐다. 공부하는 딸보다는 골프선수 딸과 사는 삶이 더 역동적이고 재미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고, 내 페르소나도 아니며, 내 꿈의 연장선도 아니다. 부모는 아이의 삶을 대신 사는 존재가 아니라, 곁에서 응원하고 지원하는 역할자일 뿐이다.


독립된 개체로서 한희가 한 지금의 선택은 자연스럽고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러 문을 열어보고, 그 문 안으로 들어가 충분히 경험해 보고(가능한 숨이 찰 때까지 경험해 보고), 그 이후 자신에게 맞는 방을 선택하는 힘. 한희는 그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선택을 지지한다.


커리어 코칭을 하다 보면 젊은 클라이언트들이 부모의 기대와 지원을 감사해하면서도 동시에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부담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보다 부모의 기대를 앞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감사와 부담 사이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순간들이다.


Albert Bandura는 자기 효능감이 네 가지 원천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성취경험, 대리경험(롤모델), 언어적 설득, 그리고 정서적 상태이다.
자신이 직접 해내본 경험은 가장 강력한 기반이 되고, 좋은 모델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가능성의 지평을 넓혀준다. 적절한 시점의 피드백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구체화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은 결국 개인의 정서 상태와 연결된다.


문제는, 많은 어른들이 아이에게 필요한 피드백이 아니라, 어른 자신의 욕구가 섞인 피드백을 건넨다는 데 있다. 응원이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 기대와 통제가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아이의 자기 효능감은 오히려 위축되기도 한다.


훈수는 전문가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 아이의 삶을 후원하는 사람에 가깝다. 나 역시 한때는 부모로서 내가 더 많이 알고, 더 옳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경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고 해서 그 아이의 삶을 대신 설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하려 한다.
응원하고, 지원하고, 필요할 때 힘이 되어주는 스폰서의 역할.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