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다 Jul 26. 2020

느리게 걷기

조금 천천히 걸어볼까

  양쪽 어깨가 나도 모르는 새 자꾸만 올라간다. 그저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푹 자고 일어난 아침에도 몸이 무거울 때가 많은데 피로가 쌓여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고 빠른 걸음도 습관적인 것이라고 여겼다. 오래전 아빠가 출근길에 등교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뒤에서 몰래 따라온 적이 있었다. 그날 밤 아빠는 아침에 본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걷다가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아 불안해 보였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나는 쭉 최대한 빠르게 걸어왔다. 몸에 열도 많아서 걷고 난 뒤에는 여름이던 겨울이던 항상 땀이 났다. 그러면 손으로 급히 부채질을 해대며 땀을 식히려고 했지만 더 더워질 뿐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조금 느리게 걸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조금 천천히 걸어볼까 생각했다. 대단한 발견도 아닌데 내게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요가를 시작했다. 정적인 운동은 나랑 맞지 않을 거란 선입견이 있어서 수련이라 하는 요가를 성격 급한 내가 감히 해볼 엄두도 내지 않았다. 또 요가가 허리에 좋지 않다는 얘기를 어디에선가 들어서인지 두려움도 있었다. 디스크로 인한 통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 때문에 섣불리 했다간 그 고통을 또 감당해야 할 테니.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 근처 요가원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허리에 무리가 가는 동작들은 많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무리하지 않고 움직이면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요가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내가 하는 동작들은 아직 발전이 없다. 낑낑대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수련을 마치면 녹초가 된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수련 때마다 선생님이 해주는 말이 있다. 이 시간만큼은 되는 만큼, 힘들면 조금 쉬기도 하고, 내 몸과 마음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면 된다고. 우리는 집이든 회사에서든, 어디서든 너무 애쓰며 사니까. 어려운 동작들은 막히기도 하고 몸이 따라주지 않아 답답하기도 해서 몸은 애써도 마음은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처음엔 수련이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도착하던 것을 이제는 조금 일찍 집에서 나서게 됐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준비를 한다. 천천히 요가원으로 향한다. 이십 분 전쯤 도착해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수련이 끝나면 또다시 천천한 걸음으로 집에 돌아온다. 


  느리게 걷는다. 늦은 밤 동네를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 작은 것들에 눈길이 멈춘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바닥에 잔뜩 나와있는 지렁이들을 보며 원래 땅에 이렇게 지렁이들이 많았나 생각한다. 가로등에서 떨어지는 바닥의 빛 조각도 볼 수 있다. 흘린지도 모르고 바쁘게 지나갔을 누군가의 소유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새로 생긴(어쩌면 쭉 거기 있었을지도 모르는) 동네 가게의 간판들도 훑는다. 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구름의 움직임도 살피다가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기도 한다. 빗속을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때는 발이 젖어도 괜찮다. 같은 길을 몇 바퀴씩 걸어본다. 늦은 밤엔 인적이 드물어 마스크를 잠시 벗을 수도 있다. 숨을 아주 깊게 들이마시고 뱉는다. 


  아직은 나도 모르게 또 올라가 있는 어깨들을 의식하며 내려줘야 한다. 몸이 긴장을 할 때 나오는 증상이다. 아직은 나도 모르게 또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는 나를 멈추고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아야 한다. 잠들어있는 중에도 몸이 긴장되어 있으면 적당한 시간 동안 자고 일어나도 근육이 뭉쳐있는 것이라고 했다. 뜨거운 물로 천천히 샤워를 하고 따뜻한 박하차를 한 잔 마셔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떠나지 못하는 날들을 위로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