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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Sep 29. 2020

네버엔딩 걱정

예쁘게 걱정하기

뫼비우스의 띠

첫째는 영유아 시절, 정말 지독하게도 안 먹었다.

하루에 최소 700ml는 먹어야 한다던 신생아 시절 우리 아이는 100ml도 넘기기 힘들어했다.

그것도 낮동안은 거의 먹지 않고, 밤에 50분마다 깨작깨작 젖을 물어댔다.

영양실조라는  (엄마로선 굉장히 슬프고 불명예(?)스러운) 병명으로 입원까지 할 정도로 아이는 먹지 않았다.

잦은 병치레로 알아낸 사실이지만 우리 아이는 철, 아연 수치가 제로에 가까운 결핍으로 음식의 맛을 맛있게 느끼기 어려울 거라 했다. 내가 아이가 되어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것은 예상뿐이지만 약을 먹는 것처럼 모든 음식이 쓴맛일 수 있다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식이상담을 받으며 아이는 조금씩 더 먹게 되었지만 세 돌까지는 항상 먹이는 것이 고민이요, 전쟁과도 같은 일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먹을 것을 걱정했고,

잘 먹지 않으니 잠을 잘 안 자서 자는 것을 또 걱정했다.

자지 않으니 먹지 않고, 먹지 않으니 자지 않고...

그러니 자주 아팠다.

그것은 정말이지 끝나지 않는 롤러코스터 같았다.


무수히 많은 날,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제발 우리 첫째, 잘 먹고 잘 자게 해 주세요."

다른 기도제목은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의 기도를 들으셨을까?

그 돌고 돌던 날들이 어느 날 끝이 났다.

기록하지 않으니 그 어느 날이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4살부터였다.


편식을 조금 하긴 하지만

밥도 아주 잘 먹고,

잘 먹으니 잘 자고,

잘 먹고 잘 자니까 잘 싸고,

병치레가 줄었다.


끝나지 않던 롤러코스터는 드디어 멈춘 걸까?

나도 이제 그 롤러코스터에서 내려도 될까?



다시 출발

참 신기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

육아의 여정엔 걱정할 일들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또 생기고 또 생긴다. 얼마나 신기한지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하나가 나오고 또 다른 하나가 잠잠해지면 또 다른 하나가 나오는 마법 같은 (하지만 반갑지 않은) 일.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안 아프면 내 임무는 완벽했던 시절, 잠을 못 자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내가 그리울 정도로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내 역할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내가 신경 쓸 것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걱정을 키우는 것 같다.

점점 커지며 심지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 롤러코스터는 다시 출발하고야 만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하는 마음

우리 엄마는 아직도 전화 통화할 때마다 물으신다.

"밥은 먹었어?"

아마 모든 엄마들이 똑같을 것이다. 그래서 밥을 잘 먹게 되면 걱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잘 먹게 되면 무엇을 먹일까 고민하게 되고, 어떻게 먹일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아이는 지금 밥을 아주 잘 먹지만 아이의 교우관계, 아이의 기질, 아이의 학습, 아이의 학교생활, 아이의 선생님, 아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걱정이 된다.


사랑하는 마음이 걱정하게 만드는 것을 알기에 그 마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하는 것이 있다.


아이의 아가시절, 아이가 밥만 잘 먹고 잠만 잘 자주면 너무너무 행복했던 그 시절. 그때의 기도와 그때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 말이다. 엄마니까, 널 사랑하니까, 네가 걱정되니까, 소리치고 화내고 윽박지르게 되는 그 마음 또한 귀한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마음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웠던 아이의 신생아 시절, 그럼에도 그 시절이 많이 그리운 것은 너만을 위해 존재했던 나의 마음이 참 예뻤기 때문이다. 남편을 처음 만나 썸 타던 서툴지만 귀여운 첫 마음처럼.


그 예뻤던 마음으로 오늘도 살고 싶다.



사실은...

엄마 롤러코스터 너무너무 좋아해! 그래서 내리지 못해도 좋아.

(변태인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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