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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Oct 01. 2020

살아내는 것과 사는 것

슈퍼 샌드위치

어젯밤, 7살 첫째가 동화책을 만들었다며 신나게 자랑했다. 괌에 살면서 한글을 완벽하게 배우지 못해 맞춤법이 엉망이긴 하지만, 그게 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첫째의 동화책

1화. 주스와 치즈

옛날 옛날에 주스와 치즈가 살았어요. 그런데 주스랑 치즈가 싸웠어요.

2화. 식빵

식빵이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치즈가 와서 같이 샌드위치가 되자고 했어요. 그래서 식빵이랑 치즈는 샌드위치가 되었습니다.

3화. 샌드위치와 주스

샌드위치가 걸어가고 있었어요. 걸어가다가 주스를 만났어요. 주스가 이렇게 말했어요. "나랑 같이 슈퍼 샌드위치가 되지 않을래?"

-끝-



이 귀여운 이야기에 엄마가 기대하는 대단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냐만은 아이는 1화부터 3화까지 미리 캐릭터를 계획하고 줄거리를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 포켓몬스터, 그리고 스테이크와 라면 정도가 머릿속에 가득한 것 같았던 아이의 머릿속에 주스와 치즈와 빵과 샌드위치까지 있었다니! 이러한 아이들의 생각들이 모여 나의 육아를 재미있고 생기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기쁨을 주고 있을까?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24시간 함께 살 부비며 산 지 어느덧 7개월이 넘었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많이 싸웠고, 많이 울고, 또 많이 후회하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인지 모르겠는 비슷비슷한 나날들. 그 속에서 나 또한 사무적인 엄마로 변해왔다.

"아침 먹자, 수업 시작해, 똑바로 앉아, 간식 먹어, 점심 먹자, 숙제해야지, 아빠께 저녁 드시자고 말해줘, 씻자, 이 닦자, 빨리 자,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

내가 하루 동안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핑크색 하늘이나 비의 축축한 흙냄새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긴 하루였는데, 나는 아이들의 매니저처럼 굴었다. 그렇게 해도 하루는 흘렀으니까. 나는 그냥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었다.


물론 그냥 살아도 우리는 살아지겠지. 나는 집안일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키우는 내게 현재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 남편은 이 불확실한 상황을 책임지고 생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나에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밌게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 아니겠느냐 질문하게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나 스스로가, 그리고 나와 함께 사는 가족의 의미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사는 게 너무너무 즐겁고 끝내주게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위해선 오늘 하루를 좀 더 생기 있고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오늘은 좀 더 재밌는 엄마가 되어야지.

어젯밤 네가 나에게 웃음을 주었던 것처럼.


우리 싸우지 말자.

그리고 모두 모두 합체해서 멋진 '슈퍼 샌드위치' 가족이

되자! 사랑해 우리 아들, 우리 딸,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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