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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데이팔팔 Aug 08. 2023

국밥예찬

내가 국밥충이라니


새로운 국밥맛집을 뚫었다. 회사 근처라 국밥이 간절한 퇴근길에 들르기 제격이다. 오늘 같은 날 말이다.

어쩐지 저녁으로 국밥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밥집은 집 근처에 있어서 회사에서는 거리가 제법 된다.

회사 근처에도 내 입에 맞는 국밥집을 뚫어 놓고 싶다는 생각 반, 너무 허기져서 단골집까지 가는 길에 아사할 것 같다는 조급함 반에

네이버 지도를 켜서 국밥을 검색했다. 근처에 있는 국밥집 중 리뷰는 몇 개 없으나 그중 하나가 ‘깔끔하고 맛있다’는 평이 있었고,

나는 홀린 듯이 들어갔다.


국밥집에 내가 기대하는 부분은 딱 두 개가 있는데, 첫 번째는 가게가 깨끗할 것, 두 번째는 국물에서 돼지냄새가 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국밥집이라도 노포는 선호하지 않으며 아무리 깔끔해도 입장 시 돼지냄새가 나는 곳은 안된다. ‘깔끔하다’는 평에 끌렸던 이유다.

그런데 이곳, 가게에 발을 들이는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홀에서도 보이는 오픈형 주방은 얼핏 봐도 모든 식기가 반짝반짝했고

홀 내부 띄엄띄엄 놓여있는 테이블들도 모두 잘 닦여있는 게 티가 났다. 고춧가루 하나 묻어있지 않은 셀프바에,

사장님으로 보이는 남녀 두 분은 모두 유니폼을 착용하고 계셨고, 주방을 드나드는 여자 사장님은 앞치마에 두건까지 두르셨다.

돼지냄새도 안 난다! 그의 목에 걸리는 합격 목걸이! 맛이 궁금해진다. 순대국밥 하나요~!

(나는 무조건 순대국밥파이고, 순대국밥 안에 들어있는 수육의 상태에 따라 수육백반까지도 수용한다.)


깍두기, 김치, 양파가 먼저 나오고 뒤이어 순대국밥이 나왔다. 순정을 좋아하기 때문에 새우젓이나 다진 양념은 절대 넣지 않는다.

싱싱해 보이는 파가 다른 곳보다는 훨씬 많이 들어가 있는 국물을 한술 떠 호호 불어 후루룩 들이키자마자 캬, 소리가 절로 난다.

입술에 쩍쩍 붙는 그런 국물이 아니라 딱 깔끔하고 구수한, 내가 원하는 국밥의 이데아. 순대는 한입 크기 여섯 개(국룰), 당연히 피순대다.

한입에 넣고 베어 물자 머금고 있던 육수가 촤르 입안을 적시며 이내 순대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이때 김치를 같이 넣어준다.

완전 생김치는 아니고, 딱 맛 좋게 익은 신김치이다. 김치도 완벽하다. 다 씹어 갈 즈음 양파를 한 조각 먹어 입을 헹군다. 다음엔 수육이다.

야들야들 얇게 썰린 수육도 보통이 아니다. 다음엔 수육백반을 시켜야지, 이번주 목요일에 꼭 와야지, 다짐하게 되는 맛이다.

이렇게 맛있는데 왜 리뷰가 없지? 의문이 드는 찰나, 나를 제외한 모든 테이블이 연세 있는 어르신이란 걸 알았다. 동네 맛집 특!

어르신 단골이 많아서 리뷰가 없는 거였다.


공깃밥을 뚝배기에 통째로 넣고 말은 다음, 빈 공기에 일부 덜어내어 호호 불어가며 한 그릇 해치웠다.

뚝배기를 기울여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완뚝이다.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맛과 포만감이 밀려온다.

단돈 팔천 원에 이렇게 배불리, 맛있는 음식이라니… 국밥은 완벽한 음식이 아닐 수 없다. 밥, 순대, 고기, 국물, 이 정도면 탄단지도 완벽 아닌가!


내가 이렇게 국밥예찬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내게 국밥은 한 번도 먹고 싶었던 적이 없는, 돈 주고는 사 먹어 본 적도

없는, 존재하거나 말거나 나랑은 평생 상관없는, 그런 메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말 그대로 안중에도 없는 음식이었다.

그러던 내가 국밥충을 만나 나도 국밥충이 된 것이다.


연애를 할 때 데이트 메뉴 1번은 국밥이었는데, 남편은 다른 모든 메뉴를 국밥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파스타나 피자를 먹을 때면 이게 국밥 두 그릇이라고? 떡볶이를 먹을 때는 이거면 국밥에 맛보기 수육도 먹을 수 있어.

커피에 디저트를 먹을 때도 이 가격이면 국밥 한 그릇 배 터지게 먹는데… 가끔 가격대 있는 레스토랑에 가면 와 이게 국밥이 몇 그릇이야?

등등의 국밥 타령을 해서 뚝배기 박살 나고 싶냐는 무시무시한 소리도 했더랬다. 그런 내가 내 돈 주고 국밥을 혼밥 하는 국밥충이 된 것이다.

이제 국밥이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국밥 없는 삶은 순대 없는 순대국밥과도 같다.


남편이 며칠 전 몇 년 만에 만난 여자사람 친구들과 호텔에서 애프터눈티를 먹었단다. 2인에 12만 원, 1인 추가 될 때마다 6만 원을 더 내야 됐다는 말에

나는 남편의 등짝을 찰싹 때리며 소리 질렀다. 오빠! 무슨 빵 쪼가리를 그 돈을 주고 먹어! 그 돈이면 순대국밥이 열다섯 그릇이다! 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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