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데이팔팔 Oct 31. 2023

개와 나의 시간

행복아 사랑해 이 말 밖엔

요 며칠 행복이의 컨디션이 안 좋았다. 날씨 좋은 가을날을 핑계로 주말마다 갔던 나들이 때문이었을까? 지난주 토요일 카라반 캠핑을 다녀온 후로 밥도 안 먹고 소변도 아무 데나 봤다. 하루종일 누워만 있고, 흔들어 깨워도 졸려 죽겠는 눈을 반쯤 떴다 감기도 했다. 체력적으로 피곤하면 보이던 반응이라 푹 쉬면 괜찮겠지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일을 하면서도 하루종일 펫캠을 들여다봐야 했고, 노견에게 좋다는 영양제를 이미 두 종류 먹이고 있으면서도 또 하나를 새로 사기도 했다. 원래라면 오늘 예약되어 있었던 부분미용도 미뤘다. 혹시나 고된 몸에 스트레스를 더 줄까 싶어서였다.


행복이는 다행히 어젯밤부터 활기를 되찾았다. 화식도 두 그릇이나 해치우고, 밤산책까지 하고 왔더니 한결 개운한 표정으로 눈을 똘망하게 뜨고는 나와 남편을 번갈아 봤다. 십 년 감수했네, 남편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컨디션이 회복된 건 다행이지만 우리는 앞으로 여러 날을 이렇게 보내야 할 거라는 것을 안다. 나는 행복이를 안락사로 보내주어야 할 타이밍을 세분화해서 정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이전에 노환으로 장수를 보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2킬로가 조금 넘는 하얀색 몰티즈였는데, 유기견 공고를 보고 데리고 왔을 때 이미 열 살은 넘은 것 같다고 수의사가 말했었다. 그때는 강아지 치매약이 상용화되기 전이라 장수는 그 고통을 오롯이 다 받으며 무지개다리를 건넜는데, 마지막엔 치매가 너무 심해서 내가 살짝만 만져도 신경질을 부렸다. 매일 밤을 아르르 앓던 장수의 목소리. 헥, 하고 옅게 내쉬던 한숨... 그때 장수에게 남은 모든 시간이 고통이었는데도 안락사 생각을 못했다. 내 욕심에 장수에게 정말 못할 짓을 했다. 행복이에게는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게 하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요즘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한다.


행복이가 없는 삶이 상상이 잘 안 된다. 행복이를 보내고 나면 유기견을 한 마리쯤은 꼭 다시 데려오고 싶다는 얘기를 평소 남편과 자주 하면서도, 사실 체감이 잘 안 된다. 행복이가 없으면... 매일 밤 행복이를 끌어안고 행복이 없으면 못살아, 행복아 10년 더 살아야 돼, 하고 돌림노래를 부르면서 행복이가 없는 시간을 대비해야 한다. 나는 많이 슬퍼도 되지만 행복이는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이를 보내고 나서도, 다른 강아지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게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의원면직 안 합니다 정년퇴직 할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