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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데이팔팔 Jun 04. 2024

15년 만에 친 토익 850점 맞은 썰


마지막으로 토익을 쳤던 것은 내가 아직 대학생일 때였다. 토익 점수 900점을 넘기면 30만 원을 현금으로 쏴주는 장학제도가 있었고, 당시 영어영문학을 복수전공으로 캐나다 교환학생 2년의 짬이 있었던 나는 취업준비 반, 30만 원에 대한 열망 반으로 토익을 수차례 치렀다. 800점 후반에서 900점대로 안정적으로 안착하기가 참 어려웠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원하던 토익장학금을 받은 데다, 토익 성적의 유효기간이 2년이고 2년 안에 취업에 성공했던 나는 이후 토익을 다시 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다. 공무원이 되어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다 갑자기 토익을 치게 된 것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유튜브를 하면서 요즘은 영상에 영어 자막을 함께 달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나의 답답한 영어 작문 실력과 갈 길을 잃은 문법을 너무나 뼈저리게 마주하게 된 것이다. 갔네 갔어... 맛탱이가 갔어... 그런 내 영어 실력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고, 자기반성 반 호기심 반으로 지난달 토익을 무려 15년 만에 재응시했다.


시험장에 들어서서는 잊고 지냈던 시험 공포증을 마주해야 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째 저째 15년 만에 본 것 치고는 풀리는 문제가 더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어쩐지 점수가 기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600점대라도 나오면 다행이라고 냉정하게 예상했고, 나는 그래도 700점대는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700점이 넘으면 얼마 전 맛있게 먹었던 초밥오마카세에 가기로 약속하고 2주 후,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850점?!


잘못 본 줄 알고 몇 번이나 다시 봤다. 성적표를 출력해서 보기도 했다. 기대도 않던 점수가 나오자 의심도 들었다. 이게 뭐가 잘못된 거 아닌가? 이 시험이 그 시험이 맞나? 이래가지고서야 이게 공신력이 있나?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말로. 위풍당당하게 성적표를 내밀자 남편 왈, 이게 어떻게 가능해? 깔깔깔.


확실하진 않지만 대충 성적 분석이라는 것을 해보자면, 리딩보다 리스닝 점수가 확연히 높은 걸 보니 그동안 직장에서 운영하는 영어뉴스청취 강의가 효용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평소 즐겨 보는 미드/영드가 도움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도 아니라면 역시 전공자의 힘일까? 낄낄낄. 하지만 역시 그냥 운이 좋았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됐든 15년 만에 친 토익시험에서 850점이라니 고무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조금 더 공부한다면 900점도 넘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당연히 욕심도 생긴다. 하지만 시험장에서 오랜만에 느꼈던 그 긴장감과 공포를 다시 느껴야 한다고 하니 공부는 하겠지만 굳이 또 내 발로 시험장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로 끔찍한 기분이다ㅠ.ㅠ 방금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지금 또 가야 할 것 만 같은 느낌. 벌렁벌렁 뛰는 심장소리가 내 귀에까지 울려오는 느낌. 다리를 쉴 새 없이 떨어대고, 무의식 중에 손톱을 마구 뜯어버리게 되는 살벌한 긴장감... 이걸 다 잊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시험 접수를 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걸 다 이겨내고 900점을 받아봐? 말아? 여전히 고민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사소한 성취를 또 하나 이뤘다는 거다. 얼마 전, 자존심을 버리고 샀던 고등학교 수능 문제집을 다시 펼 차례다. 어쩌면 이 작은 성취가 더 큰 성공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설령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다. 영어를 놓지 않는 것, 이 다짐과 실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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