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데이팔팔 Jul 27. 2023

불화자 차면 열불 터져요

노브라지향

귀가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었다. 브래지어를 벗는 일이다. 등 뒤의 후크를 풀고 나면 그제야 숨이 탁 트이면서 막혀있던 십이지장이 뻥 뚫리고 속이 확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의 버릇이다.


추위를 지독히도 싫어하지만 겨울이 반가웠던 단 한 가지 이유는 옷이 두꺼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브래지어를 안 해도 됐다. 그러나 그 마저도 늘 가능한 일은 아니었는데, 가끔은 두꺼운 옷으로도 커버가 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골반 전방경사의 체형을 갖고 있는 나는 그래서인지 명치가 좀 튀어나와 있는 듯하다. 명치를 감싸고 있는 흉곽이 너무 앞으로 오므려져 있달까? 그래서 명치 부근을 지나는 브라끈이 지독히도 답답하다. 편할 것 같은 여러 가지 형태의 브라를 착용해 보았으나 뭘 하든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식사 후 포만감이 느껴질 때면 증상은 더 심해졌는데, 사무실에서도 이놈의 빌어먹을 불화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세주를 만났다. 바로 니플패치다. 양쪽 가슴에 착 붙이기만 하면 되는 스티커인데, 말 그대로 스티커이기 때문에 흉곽이 조일 일이 없다. 내 인생은 이 니플패치라는 것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이 손바닥만 한 스티커 두 개는 삶의 질 향상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아주 더운 여름철 하얗고 얇은 상의를 입을 때가 아니라면 전부 이 스티커 두 개로 커버가 가능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템이 있다 하더라도! 내 몸이 가장 편한 때는 역시 아무것에도 조여지지 않고,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은 자연 그대로일 때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억울해지는 것이다. 도대체 이 지방덩어리가 뭐라고 이렇게 꽉꽉 조이고 꽁꽁 숨겨야 한단 말인가. 상의를 입었는데도 유두가 당당하게 붉어져있는 남편의 가슴을 보자면 세상 원통할 수가 없다. 저 사람 가슴이 나보다 크다고요! 그럼 불화자는 저 사람이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저 사람 꼭쥐쓰는 괜찮고 내 꼭쥐쓰는 안 괜찮은 이유가 뭔데요!


알고 있다. 아마 이 나라에서 여성들이 '공공연히' 노브라로 다닐 수 있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어린 여자 가수가 브라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가 뭇매를 맞았던 것을 기억한다. 이후 토크쇼에 출연해서 노브라인 것이 편하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었다. 그게 4년 전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조차도, 누군가 같은 행동을 한다면 똑같이 뭇매를 맞을 것이다. 이 나라는 여성들이 '대놓고' 노브라로 다니는 꼴을 절대 두고 보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몰래' 노브라로 지낼 예정이다. 니플패치까지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존재감 강한 나의 꼭쥐쓰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거니와, '쟤 노브라 아니야?' 하는 험담의 '쟤'가 되고 싶지도 않고, 변태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보다 가슴이 큰 남편의 꼭쥐쓰는 용납되지만 나의 꼭쥐쓰는 용납하지 않는 이 사회가 꼭 브래지어 당한 나의 명치만큼이나 답답하지만 교양 있는 사회인이 되려면 분위기에 맞출 수밖에. 내일 붙일 패치를 씻어둬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 소는 누가 키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