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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데이팔팔 Jul 29. 2023

진상민원 특

내가 만난 진상 이야기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후 동사무소, 구청, 시청, 사업소에서 모두 근무해 본 경험이 있다. 우리 지역의 경우 임용이 되면 제일 먼저 동사무소로 발령이 나고 그다음 구청으로, 전입시험에서 합격을 하면 시청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구청에 소속될 경우 공직생활 동안 동사무소와 구청을 오가고, 시청에 소속될 경우 시청과 사업소(또는 기타 산하기관 등)를 오가게 된다. 


부서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동사무소나 사업소에서는 대민업무를 할 가능성이 높은데, 대민업무를 하며 내가 만난 진상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진상민원 1단계. 초장부터 반말하기

대민업무를 할 때는 기본적으로 '안녕하세요~ 뭐가 필요하세요?' 하고 묻는 것으로 업무가 시작된다. 이런 물음에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로 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 좀 해줘. ~가 필요해. ~하려고 하는데? 등이다. 물론 7~80대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하는 반말은 기분 나쁘지 않다. 돌아가신 조부모님을 생각하며 충분히 손녀의 입장에서 대해드릴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머리가 세지도 않은 50대의 장년층이 하는 반말은 다르다. 나에겐 부모뻘도 아닌 사람들이 다 같은 성인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는 것은 기본상식 아닌가?  


진상민원 2단계. 우기기

관공서에 일을 보러 갈 때 본인 신분증을 지참하는 것은 성인으로서의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권리관계를 발생시키는 서류를 뗄 때나 혹은 그러한 절차를 수행하려고 할 때, 담당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해당 민원인의 신분을 확실히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법적 절차를 밟아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이런 내용을 설명했을 때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 내가 왔는데 왜! 아 그냥 해줘 왔잖아! 아이씨, 그러면 갔다 오라고? 아니 내가 본인이라니까! 

- 그러니까 선생님, 선생님이 그 본인이시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신분증을 보여주시라는 겁니다. 신분 확인이 안 되는데 어떻게 업무를 도와드려요...

- 아 다음부터는 갖고 올게 이번엔 그냥 해줘. 좀 해줘 그냥.

-...


실화냐고? 하루에 세 번 이상 있다. 


진상민원 특 3. 고함치며 욕설하기

앞의 우기기 진상이 발전한 형태다. 본인이 원하는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을 때, 본인이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주로 갑자기 분노 조절 기능을 잃고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치는 행동을 동반하며 아래와 같은 주옥같은 대사들을 공통적으로 내뱉는다.


- 내가 누군지 알아?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았으므로 알 수 없음)

- 제일 높은 사람 나와! 

-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xx들이 일을 이따위로 해!


내가 대민업무를 하며 들어본 가장 천박한 욕설은 '씨@, @같네'이다. 이 발언을 한 진상은 지금도 종종 내게 업무를 보러 오는데, 당시 워낙 크게 소리를 질렀으므로 이 자가 오면 나의 동료들은 일제히 '@같네'왔다고 속삭여 나에게 알려준다. 자신이 뱉은 말이 자신을 칭하는 별명이 되었다는 것을 그 사람은 알까? 


임용 초기에는 위와 같이 소리 지르며 떼를 쓰는 민원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정상인으로서의 지극히 정상적인 신체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3년 차쯤 되자 슬슬 이것도 별일 아니게 되었고, 이제는 이런 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당황은 할지언정 겁나지는 않는다. 사실 화가 나는 건 그쪽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욕설을 퍼부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건 그쪽이지 역시 내가 아니니까. 내게 xxx야!라고 외친다고 해서 내가 xxx가 되지는 않는다. xxx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이다. 


언젠가 진상 민원인에게 시달리고서 풀이 죽어있는 저연차 직원이 안쓰러워 해준 말이 있다. 욕을 하거든 아 이 사람 자기소개를 하네,라고 생각하라고. 그런 사람들은 살면서 보고 배운 게 소리 지르고, 욕하고, 떼쓰는 거밖에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고, 대화를 하고, 설명을 듣고, 때로는 거절을 당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배우지 못한 건 네 탓이 아니라고. 그 직원은 요즘도 내게 가끔 그때 얘기를 한다. 일을 하면서 말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언니가 해줬던 말이 항상 생각난다고. 아 이 사람 못 배워서 이렇구나 하고 생각하면 화가 누그러진단다. 아마 내가 그 말을 해주지 않았어도, 연차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았을 일이다.


우리나라는 희한하게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는 나라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소리 지르고 욕한다고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돼도 안 한 말이 사라질 때까지, 진상민원을 대하는 모든 공무원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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