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보다 더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
이별은 여전히 슬프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됐다.
재회의 기쁨이 그 슬픔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대학 초기, 상경하여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나는 분리불안 같은 걸 겪고 있어서 가족과 친구들이
내 곁에서 사라질까 봐 늘 불안해하던 학생이었다. 이별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그 시절 일기장에는 남자친구 없어도 되니까, 대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옆에 계속 있게 해 주면 안 되냐고 하느님께 딜을 하는 내용도 있다. 그래서 그 시절 남자친구가 없었나....
베이징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헤어질 때, 그들은 It's also a part of life라며 쿨하게 인사했고,
쿨하지 못한 나는 집에 돌아와 베갯잇이 젖을 정도로 엉엉 울었다.
헤어짐은 없고 만남만 있으면 안 되냐고 기도드리던 어렸던 나.
유럽에서 1년간 살아보는 여행을 하면서 나는 또다시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고,
한 달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과 이별하고 난 후에는 어김없이 집에 돌아와서 눈물을 쏟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눈물로 이별했던 친구들과는 어디선가 기적처럼 꼭 재회했다.
그리고 재회의 순간을 기다리는 설렘은 만남 그 이상의 기쁨이었다.
화려하고 외로운 도시 런던에서, 항상 다음 만날 약속을 잡으며 관계를 이어가려 노력했던 소피는
리옹 대학원에 합격하여 나와 같은 시기를 리옹에서 보냈다.
베이징에서 친해졌던 네덜란드 친구들을 라이덴에서 재회했고, 그때 라이덴에 반한 나는 네덜란드로 석사
유학을 결심했다. 그 시기 나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던 친구와 아직도 가끔 만나 중국에서 유학하던
호시절의 추억을 나눈다.
런던 어학원 같은 반 친구로 친하게 지냈던 친구 그룹의 마지막 멤버였던 N을 빅토리아 역에서 배웅하면서, 나는 왠지 이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역시나 집으로 돌아와서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N과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재회하며,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할 정도로 깊은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내 기도에 대한 답은 이 일 년간의 여행길 위에 있었다.
만남만 있고 헤어짐은 없는 곳은 없으니, 무수한 연습을 통해 단단해질 것.
그리고 헤어질 때의 슬픔보다는 재회할 때의 기쁨으로 관점의 추를 옮겨 볼 것.
감사하게도 재회의 순간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찾아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별의 아픔보다 다음 만남의 기쁨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설령 재회하지 못하더라도 서로 공유하는 추억이 각자의 삶 속에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그 나름대로도 꽤 괜찮은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