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회피형 사랑의 종말

[서평] 광인, 이혁진, 민음사

by 밤결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인 23년 5월, 나는 홍대에 있는 O심리센터에서 진행하는 정신분석 심리학 스터디를 한 적이 있다. 무의식에 대해 이해하고 무의식을 의식화함으로써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마음과 반복적인 잘못된 행동들을 파악하고 교정하는 활동을 했다.


이 소설을 읽고 스터디에서 알게 된 의처증에 걸린 남자의 사례가 생각났다. 끊임없이 자신의 아내가 순결하지 못하다며 의심하고 괴롭히던 그. 그러나 그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니 아내는 사실 순결한 사람이었고 반대로 그가 자신의 순결하지 못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에게 투사하여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자기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습은 모른척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투사하며 의심하고 분노한다. 소설 광인에서 해원도 그랬다. 아버지의 폭력과 물질권력주의에 냉소하면서도 결국 삶을 답습하고 만 해원과 대비해 준연은 음악으로, 하진은 위스키로 순수한 사랑을 행한다. 해원은 그 순수한 사랑이 결여된 자신에 대한 분노를 둘에게 투사하면서 준연과 하진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리고 하진을 소유하려 든다. 마치 자기 자신의 결여된 순수성을 하진으로 채우려는 것처럼.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자란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소유에 대한 욕망만이 지배하고, 자신이 그 사람을 갖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사랑의 대상의 모든 것을 파괴해서라도 곁에 두고 싶은 충동을 느낀 해원은 하진을 소유하기 위해 하진의 삶이자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인 위스키공장을 파괴한다.


하진은 준연의 죽음까지 목도하고, 모든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살아야 하는 목적과 책임을 만들기 위해 해원과 결혼한다. 하진이 옆에 있었지만, 하진을 잃은 해원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절망에 빠진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상실감, 죄책감에 무너질 때쯤 다시 맹목적 사랑이 찾아온다. 둘의 아이 준연이었다.


이유 없는 사랑의 시작. 해원은 점차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 것인가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해 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을 인정하는 것.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하진과 준연에게 행했던 고통에 대한 죄책감이 해원의 전신에 휩싸인다. 고약한 회피형 사랑의 종말은 자기 자신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던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품고 고통에서 빠져나올 마지막 결정, 다분히 그 결말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상대방이 분노할 시간도, 용서할 기회도 주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휘발해 버리고 증류되어 남은 건, 감당할 수 없는 취기가 만들어 낸 광인이다.



좋은 사람이란 그 한 사람만 있어도 살만하다 생각이 드는 사람이죠. 싫은 사람이란 그냥 생각하기도 싫은 결국엔 우리와 무관한 사람들이 뿐이고요.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살 수는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잘, 열심히 살 수는 없어요. 그게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싫은 사람에게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수밖에 없는 거예요.그렇게 밑진는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싫은 사람을 만나고 겪어봐야 좋은 사람이 왜 좋고 어떻게 좋은지 알 수 있으니까요. 또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싫은사람은 대가고 좋은 사람은 목표죠. 27p


왜 하필 내 구덩이에만 이런 실망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요. 구덩이에 빠졌으면 닥치고 빠져나와야 해요. 기를 쓰고 어떻게든 기어 올라와야죠. 내가 누구인줄을 말해주는 건 구덩이가 아니라 그 구덩이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느냐니까요. 48p

노래는 끝나요. 아무리 별로인 노래도 끝나지 않는 건 노래가 아니라 소음이죠. 49p

얼마나 비싼 술을 마시느냐보다. 어떤 사람과 마시느냐가 술술 마시라는 걸 얼마나 있느냐보다 누구한테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크든 작든 액수로 마음을 재지는 말아요. 우리. 54p

지났다는 건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걸 의미하지 않아. 더는 물을 수도 얘기할 수도 없어지고서야 그 모든 게 지난 것이 되고 그게 지나간 것이라는 말의 의미야. 물을 필요도 얘기할 이유도 없어진 것. 엄마이고 딸이라서 얘기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엄마이고 딸이라서 얘기할 수 없는 것도 있어. 화해할 수 있는 게 있다며 화해할 수 없는 것도 남을 수밖에 없고.
... 시간이 지나야 더 많이 겪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게 있고 그때야. 뒤늦게 하지만 역시나 그만큼만 이해하고 화해 할 수 있어. 86p


개들이 아무리 짖어도 열차는 간다는 말처럼 그냥 내꺼 한다는 생각만 해 그 사람들을 위해 뭘 할 필요도 없는 거고 그러니 휩쓸릴 필요 없어 지나가게 내버려 두고 웃어버려 우리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건 그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고 우리가 만드는 거니까.그쪽에 끌려갈 게 아니라 이쪽으로 끌려오게 만들 생각을 해야지. 104,105p

모른다는 거, 나뿐 아니라 아무도 모른다는 거. 그래서 생각했던거야 뭘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그냥 문득 하고 싶어서 선택했을 수 있어. 질질 끌어온 부담감 때문에 선택했을 수도 있어. 나 자신도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뭐든 달라지지 않는 건 내가 원한 선택 내가 내린 결정이라는 사실이야. 그럼 답은 하나지. 거기서 뭔가를 해내야 하는 거. 내가 하기로 한거니까 도망쳐서도 안되고 남 핑계를 댈 수도 없어. 그럼 끝을 봐야지. 거기에서 나 스스로 그걸 그때 처음 알았어. 내가 선택해야 날 끝까지 다 쥐어짤 수 있다는 걸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결국 그 사람이 그걸 얼마나 원했는지고. 125p

한줌처럼 작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사랑하는 강력하고 드넓은 능력 제대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진정 소중히 여겨야 할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137p

어떤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거지. 다르니까. 그렇게나 엇갈린다는게 바로 다르다는 뜻이니까. 어차피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자기 성격대로 성향대로 사는 거지. 뭘 얼마나 원하는지,그게 성향,어떻게 원하는지, 그게 성격. 167p

어렸을 때는 만나기는 쉽고 헤어지기는 어려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만나기는 어렵고 헤어지는 건 쉬웠다. 167p

우리는 한 인생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될 수 있어요. 인생은 하나고 우리의 시간도 하나니까요 우리는 다 매어 있어요 속박당해 있죠 인생의 시간에요 그걸 벗어나려고 하면 방종이고 망상인 거고 거기에 갇히려고 하면 감상이고 자박인 거예요. 우리는 속박한에서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해요.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속박이라는 뜻이죠. 어떤 속박을 선택하느냐가 우리의 자유예요. 214p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거니까.222p

모르는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물어라. 하겠다고 한 일은 반드시 끝까지 해라. 할 수 없는 일이면 왜 할 수 없는지 생각부터 하고 말을 해라. 니가 너라서, 여자라거나, 아시안이라거나, 어리다고 존중받고 대우받길 기대하지 마라. 일터에서 응석부릴 이유나 권리는 누구한테도 없다. 단지 니가 한 일로 사람들이 널 존중하고 대우하게 만들어라.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겸손한 건 비굴이나 아양과 구분할 수 없다. 겸손하지 말고 친절해라. 호의를 받았으면 감사해하고. 실수를 저질렀으면 사과해라. 불쾌했으면 불쾌하다고 말하고 지나친 요구를 받으면 그런 건 하지 않는다고 말해라. 화를 내지도 속상한 표정을 짓거나 눈물을 흘리지도 말고 강하고 단호하게. 아무 일도 없자면 가볍게 웃어라. 그저 친절하게. 뭘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처럼 웃지 말고. 267p

왜 희망도 사치라는 말이 있잖아. 그건 보통 쓰는 것과 반대로 맞는 말이야. 희망은 정말 사치니까. 희망이 없다면 우린 다 노예고 그냥 밭에서 챙기나 끄는 소나 마찬가지야. 평생 남의 일이나 해주다가는. 270p

그러니깐 더 사랑할 게 필요한 거야.우린 다 똑같아. 자기 일은 자기 일이라서 힘들고 남의 일은 남의 일이라서 괴롭지. 사는 건 누구에게나 고달프고 어려워.그래서 더 누구 할 것 없이 다 희망이랄게 사칠게 필요하다는 얘기야.271p

그럼에도 우리의 순서는 오고 말 것이고 그을음과 그림자는 결국 떨쳐낼 수도 벗어날 수도 없을 터였다. 그리고 종국엔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그을음과 그림자가 될 터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같이 있었으니까. 사랑하고 살아 있다는 걸이 행위로 피부에 새기듯 확연히 실감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디론가 떠밀리고 끌려가고 있지도 않았다. 내가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관계 속에서 원하는 걸 하고 있었다. 오직 사랑 많이 줄 수 있는 명징한 기쁨과 환희의 감각을 느끼며 완연히 충만히 살아 있었다. 외롭지 않았다. 두렵지도 않았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없다면 죽음은 무엇일까? 단지 해가 지는 것뿐이었다. 가을이 왔듯 겨울이 오는 것 뿐이었다. 사랑은 인정이고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 죽음에 반항하는 방식이었다. 사랑하고 있을 때 단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을 열렬히 실감할 때 죽음은 단지 침묵에 불과해진다. 하진의 연주가 끝났을 때 들었던 그 의심도 두려움도 없고 외로움마저 없는 침묵. 사랑은 환상이나 감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 없이도 사랑은 이미 사랑이었고 절실히 필요했다. 우리는 살고 있는 것만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까.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할 때 죽음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까. 자식들이 커간다는 그 실감 속에서 부모들이 다 그런 거지. 한마디로 자신들의 늙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듯 그 긍정, 인정이 슬프면서도 기쁜 것이듯 사랑도 기쁘고 그래서 슬펐다. 모두 모든 것이. 346p

하진의 말이 떠올랐다.죽음이 끝에 있다고 죽기 위해 사는 건 아니고 모두 헤어진다고 헤어지기 위해 만나는 것도 아니라고 했던.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삶은 죽음으로 모든 만남은 헤어짐으로 흘러가고 순종했다. 사랑만이 그것에 반항했다. 거스르고 맞서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흘러가고 순종하는 것으로. 기꺼이. 그 한 단어의 의미들이 뒤집혔다. 흘러감은 선택이 되고 순종은 결행이 됐다. 내가 하진에게 시작하자고 했던 것도 하진을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지금 이렇게 그 그을음과 그림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하진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기꺼이 헤어짐을, 죽음을 받아들인다. 음악이 기꺼이 침묵으로 끝나듯. 그리고 그 기꺼운 받아들임으로 사랑은 만남과 만남에서 헤어짐을 삶에서 죽음을 완벽히 지운다. 음악이 시간에서 침묵을 완벽히 지워버리듯 침묵이 오는 건 오직 음악이 끝난 뒤다. 그게 끝이라는 의미, 상태다. 347p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어요.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게 하고 싶은 거죠.422p

자기가 사랑한 것과 스스로 약속한 것조차 믿을 수 없다면 아무것도 믿을 수 없고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건 결국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자 가짜가 되는 거예요. 예술가인 척하는 예술가들처럼요. 작품에선 자기가 발견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삭은지 오래된 예술품이나 모방하고 인생에선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죽은 지 오래인 예술가의 삶이나 모방하는 싸구려 가짜 예술가들요. 자신과 작품을 믿지 못하는 예술가의 끝이 거기죠. 423P

사랑해서 약자가 되는 건 결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늘 잃는 걸 헤어지는 걸 더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죠.565p

우린 푹 빠질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푹 빠져야 사랑인데 그게 사랑의 감축인데요. 서로가 얼마나 괜찮고 좋은 사람인지 어느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서 친구일 수밖에 없죠 너무 잘 알고 있어도 너무 똑같아도 안돼요. 사랑은 왠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늘 조금 부족한 곳으로 채워짐이 필요한 곳으로만 흘러가죠. 사랑이 채우는 거니까 채워지지 않는 것까지 채울 수 있게 사랑이니까. 569p

사랑은 기꺼이 두 번째가 되어주는 것이고 서로에게 최악이 되지 않는 다만 최악을 지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 시도와 노력이고 행위였다. 660p

사랑은 지독히 어렵고 힘든 것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재능과도 무관한 의지와 노력 헌신과 희생 용기와 노력을 요구하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고 믿을 수 없던 것을 믿게 해주고 우리가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던 것을 해내게 해줄 수 있었다. 사랑이 끝나더라도 그 경험과 능력은 우리가 새롭게 사랑할 것을 더욱 힘껏 사랑할 수 있게, 그래서 더욱 힘껏 살아있게 해줄 수 밖에 없었고, 준연의 말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약자가 될 수 없었다. 약자가 되는 건 사랑할 줄 모르는 그저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사랑일 뿐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삶에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듯. 662p

모든 자진에는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여지가 남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여지만큼 삶은 개별적이었다. 혼자였다. 거긴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뭐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었다. 미쳐버려도 상관없을 만큼. 그 여지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고 자기 자신일 수 있었다. 역시 그 여지 때문에 우리는 외롭고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우릴 볼 수 없는 곳에선 아무도 우릴 안아줄 수 없으니까. 사랑한다고 그 여지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완전한 사랑은 없으니까. 하지만 완전해지기 위해 사랑하는게 아니었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면 그 여지밖에 오로지 혼자이고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이 될 때 그 불완전함까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하진이 했던 말처럼 그게 우리가 하는 사랑의 특별함이었다. 특별하지 않아도 아무 기대 없이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사랑은 긍정이고 인정이니까. 그 긍정과 인정으로 사랑은 죽음과 헤어짐까지 삼켜 버리니까. 6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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