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앤을 알까? 아니 앤을 알더라도 내가 느끼는 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요즘 아이들은 가지고 있을까?
어릴 적 보던 만화에 원작 소설 그리고 실사 드라마까지 섭렵한 나로선 아니 내 또래의 여성들에겐 아마도 앤은 절대적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어디서든 앤과 관련된 것만 보이면 갖고 싶고 오래전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구 찍고 싶어지니까.
캐나다 CBC TV 드라마, 1985
광화문 교보문고
주말에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한 곳에 멈췄다. EBS에서 빨간 머리 앤을 방영하는 것이다. 이미 4화 중간을 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줄거리는 다 꿰고 있으니 상관없었다.
4화 내용은 앤이 학교 친구에게 말실수를 해서 학교 생활뿐 아니라 마을에서도 따가운 눈총과 편견으로 힘들어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와중에 아이가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었을 앤에게 애정 어린 측은지심을 가지는 매슈와 여태 참다가 더 이상 못 견뎌 울며 들어오는 앤을, 이해한다며 꼭 안아주는 마릴라의 모습에서 눈물이 났다.
넷플릭스 시즌1, 3화
4화는 거기까지, 1화부터 차근차근 정주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작품성 있는 드라마라는 걸 어디에서 본 걸 어렴풋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해준 동서네가 갑자기 고맙게 느껴졌다.
영화나 드라마는 혼자 보는 걸 좋아한다. 혼자 보면 온전히 그 작품에 몰입하며 푹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앤은 아니다. 나 혼자 보기에는 아까웠다. 이건 왠지 꼭 딸과 함께 보고 싶었다.
어제부터 1화를 가족과 함께 봤다. 시즌1의 1화는 89분 정도로 좀 긴 편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미 아이들도 한참 전에 책으로 읽은 상태였는데 그 기억력이 놀라웠다. 장면마다, 나오는 인물마다 제각각 코멘트를 다는 폼이 책을 건성으로 읽은 건 아니었나 보다.
1화가 끝나니 같이 본 아들은 다음이 궁금하니까 2화도 계속 보자고 떼를 썼지만 하루에 한 편씩만 보기로 했다. 아이들도 나만큼이나 꽤나 흥미롭게 드라마를 본 듯하다.
만화나 원작에서는 못 느꼈던 초록색 지붕 집으로 오기 전 앤의 처절한 모습이 이 드라마에서 보인다. 완성도 높은 각본과 18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주연배우의 탄탄한 연기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늘 본 2화는 생각지도 못한 매슈의 앤 찾아 삼만리 여행기가 그려진다. 이렇게까지 이들은 서로 가족 되기가 힘들었구나. 매슈 아저씨의 절절하고 따뜻한 눈빛과 연기가 인상 깊었다. 먼저 앤에게 딸이라고 말해준 매슈,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릴라. 3화부터 그려지는 이들의 진짜 가족 되는 모습이 무척 기대된다.
넷플릭스 시즌1, 2화
아이들 재우고 혼자 후딱 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엄마의 어릴 적 정서를 함께 아이들과 공유하고픈 마음도 커 참기로 한다.
2017년 시즌1이 방영됐는데, 앞으로 한동안 앤 타령하게 생겼다. 그래도 언제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으니 앤은 괜찮다고 하겠지.
얘들아, 우리 시즌3까지 재미나게 같이 보자꾸나. 힘겨운 시절을 버티게 한 앤의 지칠 줄 모르는 상상력의 세계, 그리고 앤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자꾸나.평범한 앤이 아닌 'E'가 들어있는 엄마의 앤이, 너희들의 앤도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