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마릴린 먼로를 아는가. 안다면 그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혹시 지하철 환풍기 위에서 스커트가 휘날리는 그녀의 모습이 방금 스치지 않았나.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그녀를 잘 알지 못하는 거다.
독특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이보다 마릴린을 더 잘 알 수 있을까. 그녀가 생전에 썼던 글들을 모아 하나의 영화가 됐다. 메모, 일기, 편지 등을 실제 배우들이 읽고 연기하여 당시의 마릴린 마음을 표현했다.
글을 낭독하는 데 있어 여러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이 몰입과 집중에 방해된다는 의견도 보이지만 난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를 더 생동감 있게 해주는 장치라 생각했다. 또한 그 방식이 이 다큐영화를 더 돋보이게 했음은 물론이다. 단순한 낭독이 아닌 배우들이 온전히 마릴린으로 전이되어 연기를 했기에 더욱 그렇다. 그들은 그 순간 마릴린과 하나였다.
마릴린은 섹시 아이콘의 대명사다. 아직까지 그녀를 대항할 만한 배우가 또 있을까. 예기치 않은 누드 사진 스캔들. 주변에선 본인이 아니라고 부인하라 했지만, 그녀는 스캔들을 과감하고 당당하게 활용했다.
그게 뭐 어때서? 내 몸은 내 건데.
그녀의 정공법은 통했다. 숨지 않는 그녀에게 대중은 환호했다. 자신감 있는 시대의 독보적 섹시 아이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은 불우했고 어떤 배경도 없던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다. 미투 운동이라는 것도 할리우드에서마저 최근의 일 아니던가. 권력을 휘둘러 말도 안 되는 갑질 행태를 요즘도 심심치 않게 뉴스에서 볼 수 있다. 하물며 작은 배역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프로듀서와 하룻밤을 보내야 했던 시대에 그녀는 살았고, 그녀 또한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라도 연기를 해야 했기에.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연기였다. 섹시 아이콘 명성은 비교적 쉽게 얻게 되지만 연기로 인정받는 배우로 거듭나고 싶었다.
그녀는 그래서 끊임없이 배움을 갈구한다. 이미 톱스타였지만 책을 끼고 살았고 연기 아카데미에서 혼신을 다한다. 그곳 스승에게 처음으로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으며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관계자는 여전히 그녀를 홀대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배역은 역시나 멍청했고 엉덩이를 흔들게 했다. 스타였고 계약은 빼곡했지만, 개런티는 터무니없이 부당했다.
콤플렉스는 사랑의 방향도 결정해주나 보다. 시대의 지식인 아서 밀러의 만남과 결혼이 그렇다. 아서 밀러 옆에서 팔짱을 끼고 그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사랑 그 자체였다. 그녀는 정말 사랑에 빠졌고 그에게 위안받고 싶었으며 또는 백치 이미지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을 수도 있다.
아서 밀러가 그녀의 기대처럼 쉼터가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그저 기본 된 남편의 자리만 지켰어도 조금은 결론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서 밀러는 세상과 다를 바 없었다. 자기 안위를 위해 그녀를 이용했다. 벗어나고 싶던 이미지는 그를 통해 더 공고해졌다. 그 와중에 그는 바람까지 피운다. 사랑하는 이에게서마저 세상이 보낸 시선과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된 그녀는 이후 서서히 무너진다.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깨달은 게 있다. 마릴린은 정말 아름답다는 것. 섹시 이미지로만 소비된 그녀여서 그랬는지 나 역시 그녀를 단편적으로 그렇게만 봤었나 보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 예뻤다. 섹시로만 소비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배우였음을 영화를 통해서 느꼈다.
좀 더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했으면 어땠을까. 과거 이력이 어떻든 스스로를 놓지 말고 초심과 같은 자신감을 갖고 꾸준히 그녀가 원했던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녀에 대한 세상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게 됐을까.
하지만 극복하기엔 그녀가 당면한 현실이 너무나 가혹했던 걸까. 그녀가 원했던 진정한 배우라는 바람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깝다.
오직 연기에만 관심 있던 한 여자, 끊임없이 배움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아름다운 여자, 그녀가 지금 있는 곳에서는 진정 행복하고 환히 웃고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