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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가득한 그녀들을 응원해

: 김호중의 팬

by 윌버와 샬롯

미스터트롯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누가 몇 등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출연자들의 인기도는 광고나 예능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확연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그들이 나오지 않는 곳을 찾기란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아무리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하지만 무 여기저기 출연하니 식상하다. 프로그램 성격과는 별개로 비슷한 시기에 너도나도 출연을 시키니 그들을 소비하는 방송이 좀 빤하게 보인다. "뭐야 여기도 나와?" 안 보면 그만이긴 하지만 겹치기 출연에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주말에는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을 봤다. 역시나 트로바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김호중이 등장했다. MBC '선을 넘는 녀석들', SBS '미운 우리 새끼', JTBC '배태랑'까지 스쳐 봤던 것만으로도 이번이 나로서는 그를 4번째 는 예능 셈이다.


전참시에서는 드라이브 스루로 간소하게나마 팬미팅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100대의 차량으로 들어온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었는데, 팬 연령이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대다수였다. 서울에서 여는 행사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온 듯했다. 멀게는 제주도, 하물며 베트남에서까지 왔다는 팬도 보였다. 부인 성화에 못 이겨 운전해서 같이 따라와 준 남편들의 심드렁한 표정을 보는 것도 꿀잼이었다.


근데 난 좀 놀랐다. 예전에 미스터트롯 어느 경연자가 광고 모델했다는 음료를 박스째로 사고, 지갑에는 그의 사진을 넣고 다닌다는 어떤 어머니의 얘기도 어디서 읽었던 것 같다. 그들은 이미 중년 여성 시청자의 국민 손자, 아들, 사위가 되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마음속 연인일지도 모르겠다.


김호중뿐 아니라 미스터트롯에서 나왔던 가수들은 도대체 프로그램에서 어떤 매력을 보여주었기에 아줌마들의 가슴에 이렇게나 불을 지른 걸까?



청소년기에 연예인을 좋아해 쫓아다니는 것은 한창때이니 럴 수 있다고 여겼다. 연예인을 쫓아다닌 적은 없지만 1세대 아이돌 '서태지와 아이들'을 조용히 좋아하던 나로서는 소년의 팬심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예전 일본 중년 여성들의 욘사마 신드롬은 좀 과하지 않나 싶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 뭘 그렇게까지 유난을 떠는지, 아줌마들이 얼마나 외로우면 저럴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김호중의 팬미팅 화면을 보니, 중년 여성들이 신세대 트롯 가수들에게 열광하는 그 이유보다 타를 대하는 녀들의 태도에 시선이 갔다.


그녀들은 그들의 노래로 위로받고 그들의 성공을 아낌없이 응원한다. 어머니들이 보내는 전국 팔도 김치뿐만이 아니라 집밥 같은 건강식 도시락까지 그 선물 내용이 아이돌이 받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건 정말 타지에서 고생하는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 마음의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같이 TV 보던 남편한테 난 말한다.


우아, 어머님들 정말 대단하지 않아.
난 내 아들한테나 저렇게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참 신기해.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다 소녀시네.



짧은 만남이지만 멀리서 기꺼이 온 팬, 그가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에서마저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팬, 직접 못 오니 딸을 대신 보내서 영상통화만으로도 행복해했던 스마트폰 저 너머 또 다른 팬,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팬.


내가 뭐라고.


당사자인 김호중도, 나도 딱 그렇게 생각했다. 도대체 이 김호중이라는 사람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진정성 있는 팬심에, 나는 느닷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팬미팅 현장에서도 그랬지만 녹화하는 전참시 스튜디오에서도 김호중 역시 울컥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렇게들 좋아해 주시나 그는 감격해했다.


요즘 많은 사랑을 받는 트롯 가수들의 매력은 미스터트롯을 보지 못해 모르지만 팬미팅하는 방송을 보면서 하나 새롭게 느낀 사실이 있다.


단 몇 분의 만남이지만 좋아하는 것을 위해 거리에 상관없이 주저하지 않고 즐겁게 달려온 그녀들. 단연코 그녀들은 모두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거면 된 것 아닌가. 행복을 미루지 않는 당찬 사람들로 내 눈에 들어왔다. 그분들의 열정이 대단해 보였고 부럽기도 했다. 그런 행동과 실천은 에너지 없이는 불가능지 않은가.


코로나 이후 옴짝달싹 집과 아이들에 매여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 난 참으로 지친 채 살고 있다. 원하는 것을 맘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속에선 열불이 나기도 하며 불만이 가득하다. 어차피 못할 것이라 지레짐작 낙심하며 삶에 활력 잃었다. 즐거운 일이라곤 별로 없는 참 지루한 요즘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다르다. 나이가 어떻기에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겠는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순수한 팬심은 그녀들에게 또 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하루의 기쁨, 삶의 활력, 또 다른 기다림과 기대. 그 마음은 그녀들을 더 건강하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더불어 그녀들이 응원해주는, 한때는 무명이던 가수는 그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게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닌가. 서로가 윈윈인 긍정 이러스가 퍼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의 마음으로 관심 있게 지켜본다는 것은 이래서 좋은가 보다. 표현하고 행동하는 열정적인 모든 팬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래에 내 아이 연예인이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막무가내로 막지는 할 것 같다. 이름하여 덕질. 그것은 이후에 다른 어떤 것에도 힘을 쏟을 수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으니까.


무기력한 내게 언니들의 열정을 볼 수 있었던 어느 가수의 팬미팅 현장은 내 가슴에도 불을 지른다. 트로트는 아닐지라도 내게도 활력을 주는 그 무엇을 찾고 싶다는 생각마저 해본다.


가슴이 설레는 그 무엇, 우리도 살면서 그런 것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게는 그게 과연 무엇일까? 요즘 당신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당신이 현재 그것으로 건강하게 행복하다면, 그것은 당연히 옳다!


Photo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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