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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깔깔대며 본 '에밀리, 파리에 가다'

: 일과 사랑을 놓치지 않는 파리로 간 미국 여자, 에밀리

by 윌버와 샬롯


심각한 거 싫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다. 예쁜 것만 보고 싶다. 만약 요즘 당신도 코로나 블루로 더욱 그러하다면 단연코 이 미드를 추천한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팍팍하고 답답한 요즘의 팬데믹 시대에 내 취향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단순해지고 싶다. 현실을 잊고 싶다. 집콕 텔레비전 화면에서라도 여행을 가고자 한다. 프랑스 파리가 그렇게 내 눈으로 들어왔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언젠가부터인가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TV 삼매경에 빠지게 되었다. 육아, 아니면 샐러리맨이라는 고된 노동을 마친 두 어른은 그렇게 사이좋게 TV 앞으로 달려가 마음을 달랜다. 한두 시간 그 바보상자로 쏙 빠져들어가 웃기도 울기도 하며 머릿속 고민들을 잠시 잊곤 한다.


종종 프로그램 선택에 있어 서로 취향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남자는 좀비가 나오거나 폭력이 난무한 19금 영화나 드라마를 선호하지만 아내랑은 절대 함께 볼 수 없다. 가끔 남자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을 때나 가능하다. 여자는 피가 난무하거나 빈번하게 목이 댕강 날아가는 류의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언제나 남편에게 부르짖는다.

악~ 그거 무섭단 말이야.
깔깔깔 웃을 수 있는 거나 틀어줘!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그런 점에서 여자에겐 여기 에밀리가 딱이었다. 신문기사를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알았다. 요즘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다는 칙릿 드라마 중 하나로 소개되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라 그랬을까.


우리도 그랬다. TV 앞에 앉은 취향이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는 채널을 하릴없이 돌리며 같이 볼 만한 것을 찾지만 마땅치가 않았다. 불현듯 요즘 인기 있다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소개하던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자기야,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재밌다는데.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솔직히 이 드라마 시즌 1 모든 편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처음엔 기대하지 않았다. 남자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견뎌할까? 그냥 젊은 여자 남자가 나오는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이지 않은가. 첫 편을 보다가 남편은 지루하다며 재미없다고 심드렁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보면서도 했었다. 같이 보는 사람이 흥미 없어하면 같이 볼 이유도 없어지니까. 그런데 왠 걸. 이 남자, 웃음 포인트에서 나랑 같이 깔깔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당신, 이거 재밌어?


남편은 "응"이라고 대답했다.


원래 업무가 외국 출장이 잦았던 사람인데 올해는 사무실에서만 일을 했던지라 얼마나 좀이 쑤셨을까. 그는 파리 자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더불어 나름 주된 배경이 오피스라 비즈니스 영어를 들을 수도 있어 괜찮다고 한다. 오, 그렇단 말이지. 나만큼이나 드라마를 좋아할 만큼 남자가 여성 호르몬이 늘어서 그런가 하는 나이 듦에 살짝 슬픈 생각도 들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남편의 기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충분히 둘은 의기투합하여 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인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드라마라며 혹평을 했다 한다. 드라마에는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프랑스인의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오긴 한다. 난 프랑스인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인이 바라보는 프랑스인에 대한 시선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오래도록 들어온 그 예들이 아직도 프랑스에서는 편견이 아니고 실제일지 더욱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에밀리는 낭만이 가득한 파리에서의 삶에 큰 기대를 한다. 어느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싱글 여성의 파리에서의 삶이라니!


회사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직장 내 따돌림,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성희롱 등이 등장하지만 에밀리는 통쾌하고 유연하게 대처한다. 겉도는 이방인에서 점차 그 속으로 당당하게 자기 역할을 찾아가는 쾌활하고 당찬 미국인 표본 같은 여성상을 보여준다.


에밀리를 괴롭히는 직장 동료 둘은 점차 그녀를 돕는 사람으로 진화한다. 에밀리를 괴롭히거나 돕거나 그들의 존재는 단연 이 드라마의 웃음 포인트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뻔하고 진부한 삼각관계 로맨스도 등장하지만 에밀리 옆에 어떤 쟁쟁한 남자가 나오더라도 외모에서만큼은 아랫집 남자보다는 못하기에 결국은 그와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를 한껏 하게 된다. 아랫집 남자 가브리엘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이 미드는 '프렌즈'보다는 덜 진하고 '섹스 앤 더 시티'의 제작자가 만든 작품이라지만 그것보다는 덜 자극적이다. 그럼에도 킬링 타임용으로 제격이다. 에밀리의 발랄한 패션, 요리하는 아랫집 남자 가브리엘의 훈훈한 외모, 그리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만큼이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파리 전경, 그것으로도 이 드라마는 시즌 2를 기다리기에 충분하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원래는 이번 겨울에 아이들과 유럽 여행을 가고자 계획을 했었더랬다. 유럽의 여러 나라 중 어느 나라를 갈지 항상 고민이 많지만 이 드라마를 보니 프랑스 파리는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 버렸다. 언제 이 소망이 이루어 질지 알 수 없지만 넷플릭스로 그 희망을 계속 꿈꾸며 치유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얼른 시즌 2가 나와 에밀리와 가브리엘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다시 기대해본다. 그리고 짓궂은 회사 동료 둘에게도 집 나간 내 웃음도 다시 찾아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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