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똥꼬에게
인연을 믿으시나요?
전 이번에 새로 들어온 책장 때문에 인연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뭐 그날은 무엇을 사기 위해 중고마켓 앱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어요.
그저 동네에 책방 홍보 소개글 하나 올리려던 참이었죠.
근데 똭! 맨 위에 떠있는 글. 제 눈에 이 책장이 보이지 뭡니까. 그것도 나눔이래요.
갑자기 휘둥그레~
책장 치수와 사진도 한 장밖에 없어 정확한 제품 상태는 알 수 없었지만 평소의 결정장애와 너무 다르게 아주 민첩히 올리신 분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눔 받고 싶어요."
일은 일사천리. 상품을 올린 지 1분도 지나지 않은 아름다운 나눔의 순간이었죠. ^^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마침 시간이 되는 친정오빠에게 부탁하여 퇴근하는 길에 이 아이를 함께 으쌰으쌰 데려왔습니다.
생각보다 꽤 무거운 아이였어요.
직접 책장과 대면하고 보니 이렇게 좋은 걸 그냥 주시다니, 너무 감사했죠.
챙겨간 감사의 음료수를 드리는 게 어째 민망할 정도였어요.
나눔 해주신 분은 나름의 사연이 있으니 책장과 이별을 결심했겠죠.
덕분에 저희 책방이 훤해졌습니다.
비슷한 색감의 다른 가구들과 위풍당당 배치했습니다.
그림책은 자고로 표지가 딱 보여야 하니깐요.
그래서였을까요.
다음 날 어린 꼬마 손님과 어머니가 함께 오셨었는데요.
진열되어 있던 '입이 똥꼬에게'를 어머니는 꺼내시더라고요.
아이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도 하시며 씩씩하게 읽어주십니다.
꽤 분량이 긴 글밥인데도요.
우리네 엄마라는 사람은 언제나 그렇게나 열정적입니다.
저희 그림책방은 주제별 큐레이션을 하고 있는데요.
초보 책방지기는 매일 책을 이리저리 옮기고 다시 주제를 세분화하고 멀찌감치 서서 멍 때리며 책장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저 원래 책이 가득한 책장 멍 잘하거든요.
요새는 더욱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언제나 변화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공간이 되고 싶으니까요.
우연이 우연히 만나 인연이 되어 저희 책방의 한 식구가 된 책장.
어때요? 너무 이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