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별 보러 가지 않을래?

: 나오니까 좋다

by 윌버와 샬롯

꽃들이 내게 손짓한다. '나 안 보고 이대로 이번 봄을 그냥 보내 버릴 거야?'라고 말을 건다.


올봄은 동네에서 펼쳐진 꽃잔치로만 만족하고 있다. 그러다 꽃구경이라도 갔다 온 누군가의 인증사진이라도 보게 되면 좀 부럽기는 했다. 이미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아직도 활짝 핀 데가 이렇게나 있었네. 여긴 어딜까?' 하면서 말이다.

날씨도 좋은데 캠핑 안 갈래?
나 이거 내일까지 끝내야 돼.


릴라는 도치에게 날씨가 좋으니 캠핑을 가자고 제안한다. 도치는 바빠서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표정에서마저 짜증이 잔뜩 묻어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릴라. 그는 솔깃한 마법의 말을 도치에게 내뱉고야 만다.


나만 믿어.
내가 다 할게. 응?


자기가 다 하겠다고 하는데 안 넘어갈 재간이 어디 있나. 못 이기는 척 도치는 릴라와 함께 길을 나선다.

에이 그러지 말고 가자.


부추기는 사람이 가끔은 필요하다. 팔랑귀가 아니더래도 타인의 제안을 한번 따라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때가 있다. 기대하지 않던 전환의 기회를 맞이할 수도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는 남편이 그럴 역할을 해주는 편이다. 망설이며 하지 못할 여러 이유를 대는 내게 남편은 일갈한다.


이번 기회 아니면
하기 쉽지 않을 걸.


마지못해 그의 말을 따랐지만 지나고 보면 결국 그 결정들은 잘한 선택이었다. 여러 해 동안 원하는 아이를 갖지 못해 침울해 있던 때, 오랜 육아로 지쳐있던 때, 아이와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 남편은 그때마다 내게 넓은 바깥세상으로 이끌었다. 덕분에 "나오니까 좋~다"를 되뇔 수 있었고 다시 일상으로 건강히 돌아올 수 있었다.



날씨 진짜 좋다~


나서기 주저하게 될 때 생각한다. '이거 했다고 우리 망하나? 아니지. 그럼 해보자.' 하고.


물론 집 밖을 나와 길을 나서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귀찮은 일들이 수두룩하다. 계획을 세우고, 검색하고, 예약하고, 짐을 꾸리고, 도로 위에서 수시간을 지루하게 버릴 때도 있다. 당연히 돈도 많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행은 결심이 어렵지 그 이상을 얻게 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경험만이 다가 아니다. 무료한 일상에 종종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그때 거기서 우리 그랬잖아." 하며 갑자기 여행길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소환되기도 한다. 우연찮게 TV에서 우리가 다녀왔던 곳이 나오면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어머, 저기 저기 우리가 갔던 데잖아. 참 좋았었지." 하면서 기억을 더듬는다. 돈이 얼마나 들었고 길을 얼마나 헤맸고 서로 얼마나 싸웠으며 고생을 얼마나 했었어도 지나고 나면 모두 재미난 소재로 바뀌어 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형의 유산은 없지만 추억은 남겨주고 싶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거리는 상관없다. 그때 그곳에서 우리가 함께 봤던 것, 느꼈던 것, 먹었던 것 등이 훗날의 어느 날 아이들에게 불현듯 떠올랐으면 좋겠다. 그런 기억들로 인해 아이들이 부모를 기억하고 피식 웃는다면 바랄 게 없겠다. 추억이 가끔은 살아갈 힘을 보태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부모인 내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다.



여행을 같이 가봐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당신은 릴라인가, 도치인가. 빈틈은 조금 보이지만 시종일관 여유로운 릴라. 티카 티카 툴툴대는 고치. 이 두 캐릭터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났다. 여행 한 번 떠날 때 누구나 겪어 봤을 상황과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불만 투성인 도치는 맛있는 것을 먹고, 하늘의 별을 보고, 하룻밤 잠을 자고 나서 마음에 여유를 찾는다. 너무 좋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표정도 밝아졌다. 릴라의 꼬심은 일에 치여있던 도치에게 진정한 쉼을 선사했다. 도치는 바쁜 일상을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분명 얻었을 것이다. 실은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릴라가 노린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고릴라와 고슴도치에서 앞글자만 빼니 릴라와 도치라는 너무나 귀여운 이름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이 둘의 여정을 지켜보는 게 내내 즐거웠다. 그림책 화면은 수채물감과 색연필로 조화롭게 채워져 있다. 연필로 손글씨를 써 내려간 이야기들은 마치 내 어릴 적 일기장을 오랜만에 찾아 읽는 것처럼 친숙하고 따스했다.


릴라와 도치가 별을 보는 장면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 둘처럼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었다. 그런데 어쩌나. 이제는 아이들이 부모를 잘 따라나서질 않는다. 남편이랑 둘이 다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아이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얘들아,
엄마랑 아빠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우리만 믿어. 으응?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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