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누이 이야기
신기하기도 하지. 오래도록 소망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어릴 때 소원이 이루어졌다. 한 번에 남자 여자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출산의 고통은 한 번만 그러나 여자 남자 아이를 키우는 각각의 느낌을 모두 갖고 싶은 마음, 난 그것을 해냈다. 어느 해 봄, 남매 쌍둥이를 낳았다. 모두가 부러워했다. 아들딸을 한 번에 낳았으니.
그러나 키우면서는 성이 같은 아이들을 낳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성이 같다면 그 둘은 오래도록 영혼의 단짝 같은 형제가 되지 않을까. 남자와 여자라는 고정화된 성역할을 가르치며 아이들을 키우진 않았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그럼에도 커가면서 남자와 여자는 구별이 되고 취향도 성격도 다르고 놀이도 달라진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적어진다.
친하게 지내는 자매 쌍둥이 네가 있다. 분양받은 새 집으로 이사 가며 아이들에게 각각 방을 줄 수 있게 되었는데도 아이들은 같은 침대에서 둘이서 꼭 자겠다고 해 그 집 엄마는 아이들 방을 침대방 공부방으로 인테리어 계획을 변경해 꾸몄다. 같은 과 동기이던 친구에게는 아래로 남자 쌍둥이 동생 둘이 있었다. 너무나 사이가 좋았던 쌍둥이 형제는 공부에도 서로 도움을 주어 같이 좋은 대학을 갔다고 했다. 성별이 다른 이란성쌍둥이, 더군다나 닮지도 않아 쌍둥이라고 먼저 밝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우리 집 남매 쌍둥이. 딸아이는 자기랑 같은 여자 아이를 왜 낳지 않았냐며 아직까지도 종종 툴툴댄다.
바로 위 오빠는 나보다 네 살이 많다. 터울이 많은 다른 형제보다 자라면서 부딪힐 일이 많았다. 장난기 많던 오빠는 나를 많이도 놀려먹었다. 말로 살살 동생을 골려먹는 재주가 특별났다. 그런 오빠에게 부아가 치밀어 분통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빠보다 한 수 아래인 동생은 오빠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최근의 어느 날 오빠가 내게 말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한테 한 말이 있다고. 동생이랑 그만 싸우라고. 얼마나 우리가 싸웠으면 엄마는 죽기 전까지도 그런 말을 했을까.
엄마의 유언 같은 말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우리는 덜 싸웠다. 대신 오빠는 보호자 모드로 돌변했다. 동생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부모님도 하지 않던 제재를 가했다. 대학 때부터 결혼 전까지 통금 시간이 있어 자유롭지 못했다. 대학생활과 연애를 충분히 만끽하지 못한 이유의 반은 오빠 때문이다. 내가 먼저 오빠에게 독립을 했다. 오빠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결혼뿐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자취하던 아파트에서 내 짐을 빼고 나니 오빠는 말했다. 책장에 있던 책이 많이 없어진 걸 보고 “그게 다 네 책이었다고?” 하며 서운해했다. 뭐가 그리 허전하고 급했던지 오빠는 내가 결혼하고 3개월 후에 자기도 결혼했다. 일찍 부모를 여읜 막내 동생이 안쓰러워 다른 형제들도 내게 그랬지만 결혼하거나 공부로 바빴던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막내 오빠와는 결혼 전까지 함께 살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던 것도 같다.
우리 남매의 진정한 평화는 서로가 결혼하고 나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는 집도 서로 매번 가까이에서 살았던 편이다. 결혼은 내가 선배였지만 육아는 오빠가 먼저였다. 오빠 네는 아이들 옷을 내게 거의 물려줬다. 시댁에서 받아온 푸성귀를 오빠 네와 나눠먹었다. 특히나 오빠는 우리 시댁의 김치를 좋아한다.
바로 위에 있는 형제가 오빠가 아니고 언니였다면 좀 덜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성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격인 것 같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고 펑펑 울었다는 오빠, 봄이 되면 벚꽃이 만발한 학교길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좋았다는 오빠, 크리스마스이브면 같이 파티하자며 초대를 해주는 오빠, 작은 것에서도 고마움과 기쁨을 찾을 줄 아는 오빠였기에 옆에서 동생을 돌보는 것도 가능했던 게 아닐까.
우리 집 쌍둥이는 얼마 전 중간고사를 보았다. 좋아하는 것도 공부 스타일도 서로 다르다. 도와가며 공부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언제나 하지만 그 나이 또래들처럼 현실 남매 모습을 하고 있다. 근데 시험이 임박하니 딸아이가 급하긴 급했었나 보다. 아들 방에 매번 들어가 물어보고 대답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부하는 모습을 종종 봤었다. 평소에는 무덤덤한 사이지만 그래도 이 둘은 서로를 살피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엄마처럼 유언을 남기지 않아도 사이좋게 가끔은 의지도 하며 살면 좋겠다.
오누이 입에 밥 한 술 넣어 주기 위해 떡 팔러 나가는 엄마 모습이 애달프다. 어떤 말도 남기지 못하고 떠난 엄마는 오누이가 얼마나 걱정이 됐을까. 둘이 사이가 좋았거나 나빴거나 어쨌든 오누이는 슬기롭게 호랑이를 해결했다.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해와 달이 보이지 않는 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 둘은 그날엔 엄마가 그리워 하늘에서 내려와 엄마와 살던 그 오두막집으로 와 서로를 만나는 건 아닐까. 해와 달이 되어 만날 수 없던 오누이 만남의 날이 아닌 걸까.
마침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6월 초에 가족모임을 하려는데 시간이 되냐고. 물론 된다. 코로나 이후 형제가 모두 모인 적이 없었다. 아침부터 어둡고 밤이 되면 더 어두운 날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만나는 것처럼 우리 다섯 형제도 이번엔 만나게 될 것이다. 그날엔 이상한 소리가 아니라 왁자지껄 떠들며 웃는 형제들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날이 정말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