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달걀을 삶는다. 쫄면이나 냉면으로 점심을 해 먹을 때 고명으로 화룡점정 달걀을 빼놓을 수 없으니까. 작금의 고물가 시대에 시댁 작은 뒤뜰에서 크고 있는 고마운 닭들 덕분에 우리는 달걀을 사 먹지 않아도 되는 알 부자다.
풍족해 그랬을까. 한 사람당 달걀 하나면 족할 것을 그 이상의 달걀을 남편은 삶고 있다. 여분의 달걀은 아무래도 그의 몫이리라. 반찬이 변변치 않아도최후의 보루, 만능 달걀 프라이면 끝나는 사람이니 삶은 달걀 하나로 성에 차겠는가.
그래서 그랬을까. 바보 같았다. 깜빡 속았다. 삶은 달걀 하니까 냉면 위에다 다소곳하게 올려지는 달걀만 생각했으니. 나만 그랬을까.
삶은 달걀. 겉모습만 보고 알 수 없어.
제목부터 그렇지 않은가. 냄비 속에 피어난 보글보글 연기구름에 쓰인 '삶은 달걀과 감자와 호박'이라니. 그저 호기심을 자아내는 재밌는 제목이겠거니 했다. 근데 계속 책장을 넘기다 보니 '삶'이라는 한 글자는 중의적인 말이었다. 처음부터 눈치채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사냥꾼처럼 작가는 덫을 놓고 미끼가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보란 듯이 이긴다. 작전에 말려들었으니 분명 성공한 것이다. 근데 정말 나만 속은 건가.
삶은 감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조금씩 나아가.
삶은 호박. 단단한 껍질 속에 달콤함이 숨어있고,
어떤 블로거는 부엌에 놓으면 좋은 그림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가정용 정수기 옆에 살포시 그림책을 올려놓은 사진이 꽤나 어울렸다. 물을 먹으러 왔다가 민트색 그림책 표지 그리고 뭉게뭉게 쓰여있는 아리송한 제목을 보고 아이는 아마도 호기심에 책을 들여다보게 될지도 모른다. 마침 그날따라 저녁 메뉴가 삶아진 달걀과 감자와 호박이라도 있다면 정말 제대로 된 설정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조금씩 나아가고, 딱딱함은 어느덧 부드러워지고, 비 온 뒤 때가 오면 우르르 솟아나고, 언제 어디서나 작은 행복은 있고, 부드러움은 모여 단단함이 되고, 꼭 닫힌 줄 알았던 문이 활짝 열리기도 하는 것.
내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 보인다. 이 음식들을 먹으며 잠시 쉬어가라 다독인다. 삶아진 삶의 글들은 흡사 잠언처럼 들렸다. 라면에서 잠시 군침이 돌기도 했지만 매일 먹는 음식들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인생의 말을 어떻게 이렇게나 잘 뽑아낼 수 있었을까. 안소민 작가는 시인이다.
삶은 라면, 때론 뿌리치지 못하는 유혹이 있고,
그건 그렇고 속은 게 조금은 억울해 오기가 발동했다. 작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삶지 못한 재료가 또 뭐가 있을지 궁리했다. 달걀, 감자, 호박, 파스타, 라면...... 으음, 작가는 이미 너무 많은 걸 써버렸다. 어지간한 건 다 삶았다. 다양한 요리에 시도를 많이 해보지 않은 나로선 다른 재료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아, 이 패배한 느낌은 무엇인지.
삶은 브로콜리. 가끔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
그러다 생각났다. 오케이, 고구마로 하겠어. 흔하디 흔한 겨울 간식 대표 강자 고구마를 작가는 왜 언급하지 않았을까. 튀겨 먹기만 한 걸까. 어쨌든 난 위풍당당하게 고구마를 삶아 보기로 했다.
삶은 고구마. 물고구마인지, 호박고구마인지, 밤고구마인지는 까 봐야 그 속을 알 수 있지. 아직 껍질 속에 숨어있는 너. 넌 누구니?
이젠 당신 차례. 오늘 당신의 삶은 무슨 요리인가. 브로콜리? 옥수수?부디 맛있게 드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