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신랑은 언제 크나

: 방귀쟁이 며느리

by 윌버와 샬롯


처자는 어쩌다 꼬마 신랑과 혼인하게 됐을까. 친정에서는 딸랑딸랑 종을 울려 사람들에게 미리 방귀 신호를 보내고 뀌었는데 어떡하다 부모님은 비밀을 숨기고 시집을 보냈을까. 딸이 얼굴이 노랗게 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을까. 시집가서 그 집 귀신이 돼라 하면 그뿐인가. 설마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는 말을 몰랐던 걸까. 나 원 참 딸랑이 종이라도 챙겨서 보낼 것이지. 종을 두고 떠나는 처자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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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디 이 처자가 말여, 방귀를 참말로 잘 뀌어.


오랜만에 다시 꺼내 든 <방귀쟁이 며느리>를 이번엔 그림을 자세히 봤다. 예전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인물이 내게 꽂혔다.


단 한 사람. 바로 며느리의 남편. 그러니까 시어머니의 아들이다. 이제야 신랑이 며느리보다 한참 앳돼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아, 처자의 집에서는 켕기는 구석이 하나 있으니 딸을 어린 신랑에게 냅다 시집을 보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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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비밀이여, 비밀.


시종일관 그림책에서 꼬마 신랑은 부모 옆에서만 등장한다. 특히나 어머니 치마폭을 꼭 붙잡고 있다. 영락없는 마마보이. 그는 단 한 차례도 아내 옆에 있지 않는다. 시부모와 신랑은 한 팀이다. 그 집 귀신이 되겠다며 혼인했지만 며느리는 삼대 일이라는 수적 열세에다 누렇고 외로운 싸움을 혼자서 벌인 것이다. 쫓겨나는 아내를 보며 작디작은 손으로 빠이빠이 인사하는 꼬마 신랑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이라니.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남의 편인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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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디 이웃 말을 부잣집 외아들이랑 혼담이 오가더니 이 처자가 그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네.


방귀 한 방에 날던 새도 떨어지고 활짝 핀 꽃도 시든다. 집 안이 뒤집어지고 요강 속 똥물이 튀어나오고 시아버지는 날아가 닷새인지 엿새인지 그 뒤에나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다. 방귀의 영향력이 플러스가 아니라 파괴의 마이너스로 발현되어 주변이 힘들게는 생겼다.


그래도 신이 아무렴 보통 사람에게 그런 대포 방귀를 선사했을까. 처자가 그럴만한 깜냥이 되는 위인이었기에 그런 재능 아닌 재능이 주어진 게 아닐까.


그라믄 방귀를 뀔라니께,
아버님은 가마솥 저놈을 꽉 붙잡고
어머님은 저기 문고리 꽉 붙잡고
서방님도 아무거나 꽉 붙잡고 계시오, 잉!


구수한 사투리로 각자에게 대처방법까지 며느리는 일러준다. 엉덩이를 들고 틀어 오린 머리가 풀어질 정도로 시원하게 꽃방귀를 뀐다. 방귀 뀔 장소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던 대나무숲을 며느리는 동네 어디에서라도 미리 찾아놨으면 어땠을까.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것이 방귀인데 그런 작전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을까. 하물며 세상에 끝까지 지켜지는 비밀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누렇게 익은 방귀는 그러니 어차피 사달이 나게 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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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가고 보니 어른들 앞에서든 신랑 곁에서든 방귀를 뀔 수가 있나.


친정으로 쫓겨 가는 길에 청실배나무 아래서 쉬고 있던 비단 장수, 놋그릇 장수를 며느리가 만나지 않았으면 어쨌을까. 그녀의 숨은 장기에서 플러스 요인을 발견한 시아버지는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참 그것도 그렇다. 돈 좀 될 거 같으니까 마음을 바꾸다니. 그 집안 참 속물일세.


신랑이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온 며느리 손에는 다시 딸랑딸랑 종이 들려있다. 엽전 다발을 들고 덩실덩실 춤추는 시어머니도 밉살스럽고 개구진 표정으로 휘파람 부는 꼬마 신랑은 여전히 부모 편에 서있다. 꼬마 신랑은 자라서 조강지처 아내를 고마워하고 사랑하게 될까. 어떤 노력도 없이 쉽게 얻은 보물 같은 아내의 소중함을 알기나 할까. 감싸만 도는 부모 그늘 아래에서 결국 망나니로 자라 아내 속을 퍽이나 썩일 것만 같은데. 옛날에 이불 뒤집어쓰고 ‘전설의 고향’을 너무 많이 봤나 보다.


뒷이야기를 상상해본다. 며느리는 계속해서 돈만 밝히는 시부모와 바깥에서 사고만 치는 남편에게 신물이 나 종 하나 달랑 들고 집을 나온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살려 거상 여걸이 되어 자리를 잡는다. 옆에서 묵묵히 상단 뒷바라지를 해주던 비즈니스 동반자와 함께 남은 여생을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노블레스 오블레스의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린다. 역시 엔딩은 해피해야 마음이 편하다. 이건 또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 걸까. 꼬마 신랑 네는 그럼 어떻게 됐을까. 며느리가 나가고도 정신 못 차리고 살다가 신랑이 도박에 헤어나지 못해 결국 패가망신한다. 옳거니, 권선징악은 옛이야기의 기본 수순 아니겠는가.


빤히 아는 옛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나면 한층 더 유쾌하게 이야기와 마주할 수 있다. 이 그림책도 그렇다. 사투리 입말이 생생하고 재미있어 꼭 소리 내 읽어야 할 책이다. 익살스러운 이야기에 낯설지 않은 신윤복 그림들이 오마주 되어 아름다운 옛그림 풍속화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덤이기도 하다. 옛이야기와 그림책의 완벽한 팀워크!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로 양질의 옛이야기 그림책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