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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버와 샬롯 Oct 05. 2022

[책방일기]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그렇단다

: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안녕하세요. 이번 주부터 세탁소를 새로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네?"


책방 바로 옆집에 있는 세탁소, 어제부터 사장님이 바뀌셨대요. 예전 사장님 어제도 계셨던 것 같은데... 이발소 사장님과 여느 때처럼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셨는데...


섭섭했어요. 그래도 9개월 간 뵈었던 분이었는데. 컵라면 냄새가 너무 자주 나 '사장님 너무 라면만 드시면 건강에 안 좋을 텐데' 그런 생각도 종종 했었는데.


상가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닫는 곳. 한여름에도 세탁 기계들 때문에 에어컨 켜도 소용없다며 그 뜨거운 날들을 선풍기로 보내셨던 곳. 가끔 지나칠 때 보이는 쪽잠을 주무시는 사장님.


인사할 때마다 쾌활하고 밝은 목소리로 받아주셨지만 삶을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정말 고단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서 종종 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엄마도 예전에 자식들 생각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셨을지도 모른다고...


제게 한 마디 인사도 없이 떠나신 게 많이 허망했어요. 그 간단한 인사조차 하지 않을 만큼 난 존재의 의미가 없었다니.


출근할 때나 상가 복도를 지나는 짧은 시간에나마 밝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던 미용실 직원도 한 두 달 전 인사도 없이 떠났을 때도 그랬어요.


떠나는 것에 그렇게 크게 의미 부여하지 말아요.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1층에 새 점포가 들어오는 것에 아쉬워하며 말하던 제게 미용실 직원은 그때 이렇게 말했어요. 마치 자신의 끝도 그럴 거라고 미리 알았던 것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단다.
그 사이에만 사는 거지.

......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그렇단다.
풀도,
사람도,
새도,
물고기도,
나무도,
토끼도,
아주 작은 벌레까지도.


오늘 아침 뜻하지 않은 이별을 맞으며 이 그림책을 읽습니다.



뭐 그들에게 잘한 일도 특별히 없기도 해요. 모든 이에게 인사받고 관심받고자 하는 건 오만한 생각이겠죠. 내 맘 같지 않다고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산다는 건 원래 다 그런 거니까요.


몸이 안 좋아 그만두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래도 이제는 더 이상 라면을 드시지 않으셔도 되고, 불편한 쪽잠을 주무시지 않아도 되고, 뜨거운 여름날 선풍기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것임에 다행이다 위안 삼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미용실 직원분,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잠시 만났었지만 그대들이 어디서라도 행복하고 건강하길 오늘 잠시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새로운 인연과 새 일상의 하루를 힘차게 시작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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