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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버와 샬롯 Jan 19. 2024

몰래 너에게 보내는 편지

: 만나자고 연락한 친구

물을 끓이고, 머그잔에 코코아 가루를 털어내고, 물을 붓고, 뜨거운 코코아 한 잔을 마시며 너에게 쓴다.


친구야, 이 책 어땠어? 근데 알아?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도 같은 작가의 책을 읽는 중이야. 기분이 괜스레 이상해지더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을 우리 둘이 읽는다는 게.


네게 소설책을 건네는 건 처음인데 어때? 읽을 만하니?


네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잖니. 항상 내가 먼저였지. 모르겠어. 섭섭한 때도 있지만 그래도 너한텐 항상 난 패배자가 되나 봐. 그렇게 난 또 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좀 아팠어."


부재중 전화에도, 카톡의 무응답에도 난 그리 신경이 쓰여. 실은 말이야. 네가 아니더라도 누구한테도 난 그런 사람이지. 시시콜콜 궁금해하고 지레짐작하고 걱정하고. 알잖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난 못 말리는 질투쟁이라는 걸.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는 좀 힘들게 살았어. 어때. 우리 이만큼은 이뤄냈잖아. 바보가 좀 된들 어때. 그래도 괜찮아. 이제 좀 편해지고 싶어.


그냥 그랬어. 만나자고 먼저 말한 네게 주고 싶어서. 너의 이름을 부르고 글을 쓰고 선물 받은 스티커를 붙여보고 리본도 묶어봤어. 얼마큼 읽었어? 난 반 조금 넘게 읽었어. 다시 만나면 서로 그 얘기를 해보자.


눈이 침침해져 책이라는 걸 참 보기가 힘들어진 나이의 우리. 쉬거라. 피곤하면 읽지 않아도 돼. 그냥 내가 생각나면 한번 책장을 넘겨볼래?


가루가 조금은 가라앉은 코코아가 그새 다 식어버렸어. 우린 지금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있어. 참 신기하지,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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