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핸드폰을 연신 보고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계속 터치하더니 내게 짐짓 자랑스럽게 말한다.
"일 년 동안 모은 포인트로 당신 커피 사줄게. 골라 봐."
"설마 방금 일 년이라고 한 거야? 눈물이 다 나려고 그러네."
걸으면 포인트가 쌓이는 앱에서 드디어 남편은 무언가를 살 수 있는 포인트가 되었다며 알려주었다. 나도 언젠가 돈이 모인다는 것에 혹해 앱을 설치해 본 적은 있으나 계속 뜨는 광고에 질겁을 하고 바로 지웠더랬다.
포인트 액수에 딱 맞춰 최대의 가성비를 생각하며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 커피와 간식거리를 난 구매했다.
지난한 인내가 필요한 포인트 쌓는 것엔 영 흥미가 없는 내게 기꺼이 남편은 한방에 쾌척한다. 그건 아마 명품백이 아니더라도 이 작은 공짜에도 팔짝팔짝 기뻐하는 소박한 내 성품 탓이 아닐는지. 슬쩍 씁쓸한 미소가 머금어지지만 인생 뭐 있나. 그냥 이렇게 소박하게 사는 거지.
그때 거기에 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럼 우리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남편은 어떨까. 마찬가지가 아닐까. 후회와 안도의 마음은 그렇게 때때로 엎치락뒤치락 바뀌며 세월이 흐르고 있다.
공주도 개구리 왕자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요, 하는 흔한 동화 속 해피엔딩이 아닌 핏빛 서늘한 결혼 생활을 그림책 <개구리 왕자 그 뒷이야기>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난 심심치 않게 거리에서 보이는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가는 부부의 뒷모습을 부러워한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라고 첫 문장을 썼다. 난 달리 말하고 싶다. 감히 지금 행복한 가정이라 자부하진 않지만 행복이라는 모습이 그렇게 모두가 비슷한 것만은 아니라고.
우리는 각자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게 될까. 서로가 많이 다른 우리. 난 꿈꾼다. 가끔은 따로 가끔은 같이 그렇게 서로에게 자유롭고 싶다고. 그때도 남편은 오래도록 모은 무언가를 내게 주고 있을까. 그새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시며 오늘은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