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ㄱ씨. 나는 책을 볼 때마다 뒤에 있는 책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찾습니다. 교정은 누가 봤고, 디자인은 누가 했고, 영업은 누가 했는지. 혹시나 내가 아는 이름이 있을까 싶어 이름 하나하나를 짚어봅니다. 자기만의 이름이 쓰인 책을 내는 기분은 어떤 건가요? 오래전 내가 책을 만드는 사람이었을 때는 책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써주진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만든 책들엔 내 이름이 없었죠. 한때 음악을 했다는 어느 날의 글에서 전혀 다른 세상의 당신을 봤습니다. 스탠딩 콘서트 관람을 위해 체력적 조언을 구하며 여러모로 신경을 썼던 당신이 참 귀여웠어요. 당신 이름이 쓰여 있는 책을 만날 때마다 무척 반가울 겁니다.
ㄴ씨. 딸아이와의 친구 같은 다정한 데이트 모습을 종종 SNS에서 봤어요. 서로가 무뚝뚝한 나와 딸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요? 알 수 없는 내일을 걱정하기보단 현재의 일상에 만족한다는 어느 날 모임의 당신 얘기가 참 인상 깊었어요. 종종 삶의 무게를 느끼며 마음이 가라앉는 내게는 그 안온한 평정심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본인의 삶 또한 풍요롭게 일구는 당신에게서 많이 배웁니다.
ㅂ씨. 이렇게 불러보니 어느 유명한 배우와 이름이 같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녀의 많은 작품 중에 한 드라마를 좋아했어요. 작가인 주인공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두고 다른 사람과 삼각 구도를 이루죠. 드라마 주제가가 난 참 좋았어요. 정보를 찾다 보니 이 드라마는 32부작이었네요. 지금으로선 감당할 수 없는 긴 호흡의 드라마였어요. 아름다운 명퇴란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이상적인 은퇴 후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예술을 즐길 줄 아는 모습에서 미래의 그런 나도 꿈꿔봅니다. 32부작이 뭔가요. 끝나지 않을 드라마 같은 당신의 삶을 응원할게요.
ㅇ씨. 무엇보다 당신은 열 일 제쳐두고 당신의 삶을 글로 쓰세요. 이젠 지겹게도 들리겠지만 마지막으로 얘기할게요. 박완서는 멀리 있지 않아요. 당신의 삶 자체가 대하소설입니다. 시골의 고향, 어린 시절, 자연, 어머니, 가족, 쌍둥이, 일, 공부 등 그 아까운 이야기 자산들을 흘려버리지 말고 기록하셔야 합니다. 쉽지 않은 부탁에 매번 힘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어요.
ㅊ씨.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이 그저 곤혹스러웠던 시간이기만 했던 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참 부러워요. ‘신이시여, 정녕 이것을 내가 그렸단 말입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작품이 당신에게도 있나요? 스스로가 만족하는 작품을 작가는 만들어내기도 하는지 궁금합니다. 내게 화가라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에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요. 무엇이든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요. 든든한 내편이었습니다.
ㅎ씨. 여기보단 어쩌면 파리 어딘가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도 싶었어요. 바람에 날아갈까 여리여리해서 조금은 걱정이 됐지만 영양제를 잘 아는 당신에게 새삼 놀랐어요. 센스 있는 패션은 또 어떻고요.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의 맑음이란 이런 거겠지, 하는 생각도 했답니다. 동화 같은 당신의 글로 즐거웠습니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꼭 그림책으로도 만나게 해 줘요.
벌써 네가 보고 싶구나.
이렇게 설레는 말이 또 어디 있을까요. 내가 있을 곳은 아니지만 보고 싶기 때문에 네가 있는 곳으로 떠나겠다고 곰은 말합니다. 겨울잠이라는 자연의 섭리마저 마다하고 말이죠. 사랑은 아마도 이런 것일 테지요. 나보다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지극히 기꺼운 마음. 논리적인 이해타산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직진의 사랑에 매료됐습니다. 그런 사랑을 저도 그간 이곳 책방에서 받았던 것 같아요.
분명 당신들이 보고 싶을 겁니다. 이 테이블 위에서 일어났던 몇 방울 눈물과 터져 나온 웃음들이 어느 날 문득 떠오르겠죠.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리울 겁니다.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앞으로도 계속 어디서건 글로 쓸 생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변함없이 수다쟁이일 게 뻔하니까요. 여러분도 당신의 자리에서 당신의 방식으로 계속 글을 쓰시길 바랄게요. 고마웠습니다. 우리 또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