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제 나를 돌보며 살기로 했다)
얼핏 영화 정보에서 코믹이라고 쓰여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했다. 근데 잘못 본 건가?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는 이거 호러 아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영화 총평만 얘기하면 결말이 아쉽다. '이태원 클라쓰'의 원작자의 첫 장편영화라고 하는데 드라마에서 보였던 시원한 응징의 통쾌함 그리고 카타르시스가 이 영화에서는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이리 사람 복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빨대 꽂는 부모, 가스라이팅 하는 직장 상사, 선배 무시하는 직장 후배, 육체적 관계에만 집착하는 능력 없는 남자친구, 살려달라고 외치는데도 (충분히 구해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혼자 내빼는 이해 못 할 아줌마, 그래도 유일하게 위안받을 수 있는 사람이 친구 하나였는데, 그마저. 결국 지아가 지아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주먹 하나, 자신의 강력한 펀치뿐이었다. (역시 운동은 필수다.)
그런데 남 탓만 할 수 있을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아는 그렇게 자신을 쉽게 허락하며 타인을 길들였던 건 아닐까. 그녀는 그런 말을 새기고 있어야 했다. 익숙해지면 호의도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라는 영혼을 갈아 넣었던 지아에게 꼭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이제는 너 자신을 돌보라고, 지금의 행복을 위해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어른으로서 자기 삶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내면의 세계를 돌보고 자기 자신을 배려할 때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나를 돌보며 살기로 했다, 박지연)
감독은 여운을 남기며 영화를 끝내고 싶었겠지만(분명 쿠키 영상이 있을 거라고 올라가는 자막을 다 봐버렸다. 끝내 아무것도 없었지만) 두 시간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은 사람으로서 내가 감독이었다면, 그렇게 끝내지는 않았을 거다. 너무 뻔하지 않냐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나를 해하려 했던 사람을 잡아들여 콩밥 먹는 장면도 넣고 지아가 스스로를 돌봐 조금씩 회복되어 이제는 좀 할 말은 하면서 (욕이나 담배가 아니더라도) 사는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엔딩은 이렇다. 지아가 한쪽 팔은 살짝 걸치고 카브리올레를 시원하게 내달리는 모습으로 페이드아웃. 캬아~ 역시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상상력 부족의 클리셰겠지만, 꽉 닫힌 결말이 좋을 때도 분명 있으니까.
비록 카브리올레는 없지만 나는 나의 글을 앞뒤 안재고 후련히 써본다. 나를 돌보는 나의 방식, 이렇게 오늘도 나는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