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배추
금메달을 따고 첫 인터뷰에서 작심 발언을 했던 선수.
실력을 갖춘 자는 말에서도 힘이 세다.
그녀는 바람대로 개인 스폰서를 따냈다.
동료들에게도 그 길이 열렸다.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최근 서울국제도서전의 여파는 두 유명인이 남긴 사진들이 증명한다.
인스타그램을 열기만 하면 그들과 찍은 피드들로 넘쳐났다.
어디서나 흥행의 관건은 셀럽인가 보다.
셀럽이 읽었다는 책,
셀럽이 방문했다는 책방,
셀럽이 열었다는 서점이나 출판사,
셀럽이 썼다는 책.
한순간 베스트셀러가 되고 핫플이 된다.
책방을 하며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있었다.
BTS가 딱 한 번만 우리 책방에 와주면 좋겠다고.
뭐 어느 상품이나 그러지 않을까.
나라도 관심 가는 사람이 좋아하는 무엇에 눈길이 안 가겠나.
물론 어느 정도는 출판계를 비롯 문화계에 선한 영향력이 되어 줄 것이다.
근데 그게 다일까.
그 인기들이 문화적 전반 긍정적 경향으로 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서점이 책을 팔아 유지되는 시스템이 되었는가.
작가는 글만을 쓰며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가.
노벨문학상 수상에 환호했지만 다음번엔 그 기쁨을 작은 동네 서점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는가.
작은 책방을 조용히 운영했던 난 조금은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최근 한적할 거라 예상했던(물론 무척 번화가에 위치했지만) 지방의 어느 독립서점을 방문했는데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는 서점을 보고 아, 작은 책방에는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건 나의 큰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되는 곳은 되는구나. 책을 좋아하는 젊은이가 이렇게나 많다니. 트렌드를 몰랐구나. 그나저나 이 중심지에서 임대료는 감당은 되려나, 하며 줄 서는 서점을 쓸데없이 걱정하고 있었다.
올리브영처럼 서점을 해보라는 글을 어디서 읽었다. 글의 면면에서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밖에서 보는 시선, 이를 테면 왜 그것밖에 못 해? 난 당신들이 안 되는 이유를 다 아는데,라고 들렸다. 글에 공감한다며 자신의 책방 경영에 참고해야겠다는 여러 댓글들에 나만 삐딱한가 좀 머쓱하기도 했다. 그 글이 대안이나 응원의 글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나란 족속은 사업 수완도 없으면서 역시나 이 모양 이 꼴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운영에 방만해서 힘든 게 아니다. 얼마나 책방지기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내가 알던 그들은 여태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도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가장 창의적이고 의욕적인 부류였는데. 거기다 다정하기까지 하다. 적어도 책에 있어선 그들의 활동과 노력이 문학계에 변화의 큰 줄기를 만들고 있는 게 분명한데.
책모임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받는 고액 연봉이 합당한가.
1. 그 사람 결정에 따라 기업 수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니 당연하다.
2. 아무리 그래도 평직원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연봉은 반대다. 최저시급을 생각하면 너무 과하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라면 납득이 간다. 천재는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릴 수도 있을 테니. 그러나 그런 대체불가한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최고도 역시나 혼자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닌데. 분명 그를 서포트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게 분명한데. 다시 묻는다. 모든 이의 소득은 정의로운가.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월급날 찍히는 통장 숫자를 보면 그것은 다 새빨간 거짓말. 내 한 시간과 그의 한 시간이 그렇게나 심하게 차이가 나도 될 말인가. 징징거리지 말라고? 그래, 알았어. 우린 철저하고도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이무진의 노래, 뱁새를 우연히 들었다.
끝까지 하면은 된다는 말이 때때론
끝까지 틀리는 때도 때때론
급박히 내뱉은 날카로운 말이 내게로
습관인 듯 끝도 없이 내게로
나는 아니려나
아니려나
아니려나
...
그까짓 좌절이 대수냐며 귀에 대고
끝까지 해 보긴 했냬 제대로
해봤지 모진 이들아 수 없이 해 봐도
안 되는 사람이 있기도 해 때론 때론
나는 아니려나. 가사가 가슴에 콕 박혔다. 어쩌면 이번엔 나일지도 몰라, 하는 기대를 안고 우린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근데 죽어라 해도 안 되는 것도 분명 있으니까. 열심히 했냐는 그 말, 듣고 보니 폭력이었다.
역시 책방은 유명해지고 나서 하는 거였어, 라며 자조 섞인 넋두리를 하다 그림책 한 권이 떠오른다.
끝내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작은 배추 하나.
그 자리에서 그만의 꽃을 피울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
아, 다르게 보면 그거라도 만족하렴, 하는 희망 고문 혹은 루저의 정신 승리?
하나의 일엔 명암이 존재한다.
바뀐 규율로 혜택 받는 선수도 있지만 이전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선수도 있을 수 있다고 염려한다. 엘리트를 위한 제도, 변화를 이끈 일류 선수나 돌풍의 주역 셀럽들에 축하는 하지만 사각지대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최고가 아니라면 말에도 힘이 없는 것처럼.
나름 작은 성장세에 있던 책방을 사정으로 정리한 지 반년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그 세계가 남일 같지 않다. 이 모든 감정들은 내게 무엇이 되게 해 줄까. 솔직하자. 욕망의 이 시기와 질투는 나의 힘이 되어주려나? 모를 일이다. 에잇, 아무것도 안되련다.
그래도 작은 배추꽃이 어여쁜 건 어쩔 수 없네. 분투하는 노랗고 노란 수많은 작은 책방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