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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직업병은?

: 제 전직은 편집자와 책방지기입니다만,

by 윌버와 샬롯

편집자 일을 그만둔 지 참으로 오래됐지만 여전하다, 그 버릇. 어떤 인쇄물을 보더라도 오탈자를 발견할라치면 안타까움이 솟는다.


아, 이게 왜 안 보였을까.

인쇄되고 나서는 보였겠지.

내가 모르는 누구도 잠시 하늘을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지었겠구나.

아무도 모르게, 그냥 나만 아는 사고이기를 기도했을 수 있겠구나.


틀린 글자를 한참을 보며 모르는 편집자에 감정 이입이 되고, 그 위에 고친 글자 스티커를 붙여 어색하게 감춘 흔적을 발견하면 못된 호기심이 발동한다. 무엇이 틀렸는지 뒤 페이지를 비춰 보며 애써 찾는다.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스티커 위장은 옥에 티로 흔적을 남기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긴 한다. 엄청난 품은 들었겠지만, 혹시나 모를 개정판에 편집자는 다음 기회를 엿볼 것이다.



오마이뉴스


대형 서점에서 일한 경력이 있던 필자는 서점에서 무심결에 책을 각 세워 정리했다는 문장을 보고 격하게 공감했다. 어제도 내가 그랬잖은가. 책을 보러 도서관 갔다가 제자리가 아닌 곳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고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책 카트에 살포시 한 아름 가져다 놓았다. 난 누군가의 일을 보탠 것인가, 덜은 것인가.


한 달에 열흘 정도 도서관에서 배가 일을 하는데 난 좀 변했다.


자음과 모음, 알파벳 순서에 매번 스스로를 점검하고 책이 정갈하게 꽂혀 있는 서가에 마음이 편해지고 조금이라도 흩트려져 있는 서가를 발견하면 마음을 먹게 된다. 그래, 예쁘게 만들어주겠어, 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그 책이 있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구로기적의도서관


최근엔 구로의 한 도서관의 피드가 눈에 띄었다. 이전에 나도 했었던 나름의 캠페인 글이었는데, 도서관 도서 훼손 및 낙서에 관한 내용이었다. 더욱 기함한 건 밑줄에 더해 개인 코멘트까지 버젓이 써놓은 도서관 책의 예시 사진에서였다. 그런 에티켓도 없는 이가 책은 왜 읽고 있는 건지 참 모를 일이었다. 이런 일로 분노가 치미는 것도 직업병이라 할 수 있을까.


내일은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들을 제자리에 반듯하게 꽂아 놓으리. 비록 다음 날이면 다시 어지럽게 되어 있겠지만, 오늘의 일을 한다. 오늘의 책을 꽂는다. 그 누구가 찾던 책을 반갑게 바로 찾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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