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밥이 옷을 사러 갔어요
"쇼핑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쓰레기 아저씨라는 환경 콘텐츠 유튜브로 주목받은 한 연예인이 구제 거리에서 옷을 고르는 장면이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그렇게 말했다. 자제를 할 뿐이지 자신도 쇼핑을 무척 좋아한다면서. 그렇지. 우리가 보는 눈이 없겠는가. 패션을 모르겠는가. 단지 소비를 좀 늦출 뿐. 하물며 초밥도 옷을 사는데.
봄에 분명 정리했는데 어느새 옷장은 다시 어수선해졌다. 새 계절이 와 옷장을 열면 입을 옷은 왜 그다지도 없는가. 그렇다 해서 옷을 사러 가는 것도 지친다. 정말 필요할 때 큰 맘을 먹어야 길을 나서는 정도다. 쇼핑은 혼자가 편하다. 누구의 조언이 필요 없다기보다 최상의 선택이라는 고민의 시간이 꽤 드는 편이기에 누가 옆에 있으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작년 늦은 봄쯤이었나. 그날은 대학 동아리 여자 동기들을 만난 날이었다. 사는 곳이 제각각이라 서로 교통이 편한 강남에서 보기로 했다. 통역사 경이가 찾아낸 분위기 있는 브런치 식당에서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일하며 아이 키우며 바삐 살고 있는 아줌마들은 오랜만의 나들이로 강남이라는 장소에 기분이 업이 됐었나 보다. 선생님 정이는 특히나 패션에 힘 좀 주고 온 것이다. 정이가 걸을 때마다 딸깍딸깍 힐이 위태로워 보였다.
"운동화만 신다가 오랜만에 신고 나온 거잖아."
"예쁘긴 한데, 발 안 아파?"
이상과 현실은 조금은 다른 법. 계단에 오르내릴 때마다 우리는 정이를 걱정스레 바라봤다. 오픈런까지 해서 근사한 브런치를 먹고 우리는 강남 거리를 좀 걷기로 했다. 이날은 바람도 좀 불고 비도 오락가락 살짝 쌀쌀했다. 나와 경이는 긴팔 겉옷을 입고 있었지만 정이는 패셔니스트답게 의상은 벌써 여름이었다. 아무래도 안 돼 보여 우리는 제안했다. 정이야, 너 강남에서 옷 좀 사 입자.
걸쳐 입을 얇은 겉옷을 찾아 사 입기로 했다. 맘만 먹으면 뭐든 찾을 수 있는 여기는 강남이 아니던가. 추위를 피할 친구 옷 사러 따라나섰다가 주객이 전도됐다. 어느새 우리는 각자 자기 옷을 고르고 있었다. 중간중간 서로가 고른 옷을 품평해 주며 우리는 옷들을 들고 매장의 피팅룸과 거울 사이를 한참 누볐다. 결국 옷 한 장씩을 구매하고 매장에서 나왔다. 그때부턴 어디를 가든 거치를 게 없었다. 정이가 더 이상 춥지 않을 테니까. 즉흥적으로 들어간 갤러리에서 우리는 그림도 보고 같이 사진도 찍고 화가의 작품에 점도 찍어보는 체험도 하고 한참을 거닐다 맥주도 마시고 대학생 때처럼 그때의 남자 얘기를 하고 지금의 자신의 아이들과 남편 얘기를 하고 시댁 얘기를 하고 건강 얘기를 하고 일에 대해 얘기했다. 일 년 치 웃음을 다 쏟아내고 날이 어둑해졌을 때서야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강남역에서 서로의 집으로 가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헤어졌다.
한창일 때 친구들과 미로 같던 동대문에서 종종 옷을 사던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그날은 아이처럼 신나게 쇼핑했다. 서로의 선택을 지지해 주고 다정하게 봐줄 선한 눈들이 옆에 있으니 그리 든든할 수가 없었다. 난 셔츠 한 장을 샀었다. 사이즈 M을 살지 L을 살지 고민할 때 경이와 정이는 M이 예쁘다고 단호히 얘기해 줘 선택이 한결 쉬웠다. 그 옷을 입고 좋은 일이 많이 생겼었다. 친구들이 괜스레 고마워 그 옷을 입고 외부 활동했던 사진을 친구들 단톡에 올렸었다. 의리 있는 친구들은 멋있다며 역시나 뻔한 호들갑을 떨어주었다. 그 옷을 입을 때마다 난 그날의 모든 장면이 떠오른다. 옷 한 벌이 그 하루의 모든 이미지를 담아줬다. 셔츠 한 장의 쇼핑이 이 정도의 기억과 행복을 주었다면 소비를 늦출 필요가 있을까. 하물며 초밥도 옷을 사러 가는데. 그러니 친구들아, 우리 또 강남에서 만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