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그늘

: 나의 그늘

by 윌버와 샬롯

창문을 꼭 닫고 커튼까지 치며 자기만의 구석에서 책도 읽고 화분도 키우며 그럭저럭 부족함 없이 혼자 사는 까마귀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저 나무를 바깥에 옮겨 심었을 뿐인데 까마귀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어떤 큰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소중했던 나무에게 정성을 들였을 뿐. 그래서 얻은 그늘에서 좀 쉬었을 뿐인데 그것이 나를 넘어 다른 이에게까지 영향이 미치게 된다. 영향을 받은 이들은 단지 그 시원한 그늘의 혜택을 받기만 했을까? 따스한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혼란으로 실의에 빠진 까마귀에게 그들은 소리 없이 손을 내밀 줄 알게 된다. 이젠 네 차례야. 우리의 그늘에서 너도 어서 와 편히 쉬렴, 하고 말하듯이.






그림책에서 공동체의 힘을 보았다. 작은 일상의 선의들이 모아져 결국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 어느 한 존재만 주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아 함께 잘 살아간다는 공생.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해야 하는 가장 최선의 생존책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최근에 본 드라마들에서 그런 장면들을 목도하며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가난한 새댁에게 쌀독에 쌀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렇다고 누군가 쌀을 주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게 조금씩 먹을 만큼만 그날그날 넣는 어느 할머니의 조용한 배려, 아이를 잃고 슬픔에 빠진 여자를 위해 자신들의 방식으로 먹을거리를 무심히 놓고 가는 이웃 사람들의 위로, 대학 세미나에 갔다가 괜스레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며 기죽은 친구의 한마디에 네가 창피하다고 말하면 여태 함께 일했던 우리 모두에게 모욕된 얘기라며 너는 누구보다도 멋진 사람이라고 말해주던 친구의 응원. 살민 살아진다는 어느 드라마 속 대사는 혼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옆에서 같이 있어주고 울어주는 공동체가 있었기에 주인공들의 살아짐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불확실성 투성이인 인생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온기 가득한 마음들이 서로를 향해 부딪치고 스며들고 포개어지는 과정들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깨달아 가는 것 그리고 서로를 향한 사소한 기적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최근에 종영한 한 드라마는 해피엔딩을 그리며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어떤 삶을 그리며 살고 있었을까. 우리들이 만났기에 나의 그늘이 너의 그늘이 되고, 그래서 서로의 마음의 그늘은 어느새 사르륵 사라지게 되는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 가는 것. 혼자보다 같이 일군 정원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림책은 말한다. 텅 빈 창문 바깥보다 꽃이 핀 초록이 무성한 숲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하다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