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위에서 사는 사람들

: 당신을 측정해 드립니다

by 윌버와 샬롯

태어나고 사는 동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저울 위에 얼마나 많이 올랐을까. 아니다. 그 저울은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다. 새 학년이면 손을 들어 살림 형편을 묻던 시절도 있지 않던가. 그런 식의 노골적인 조사는 사라졌지만 마음만 먹으면 한 사람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장치가 더 흔해졌다. 어느 대학을 나오고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어디에 살며 어떤 브랜드 몇 평의 아파트에 사는지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하기도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류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지만 왜 출발선은 서로 다른 것만 같고 박탈감은 더 심해지기만 하는 걸까.


SNS에서는 멋진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대는 사진들 천지다. 어쩌다 건진 찰나의 행복을 은근슬쩍 뽐낸다.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그것을 엿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상대적 초라함을 확인하기도 한다. 비행기에 올라 비즈니스석을 지나 이코노미석으로 가는 그 짧은 순간 마치 설국열차 뒷 칸 사람이 된 것 같은 열패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나 또한 타자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사람이기도 하다. 세상이 원하는 이미지, 그 기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로이 스스로 정한 기준에 맞춰 사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부럽기도 하다. 결국은 그런 내공으로 무장하여 단단히 나답게 살고 싶은 것이 최종 삶의 목표이기도 한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서 산속으로 들어가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중학교 때 어느 날 선생님이 붙여 준 질투의 화신은 아직까지도 조용히 내 안에서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니까.


부피를 재어 비만의 정도를 측정합니다.



나이가 드니 이전에는 고려치 않은 다른 측정의 성적표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 사람의 피부결, 옷차림, 가정의 화목, 아이의 성장, 노후대비 등 예전엔 젊음으로 커버될 수 있다 자신했던 것들이 이젠 더 이상 복구가 힘든 마침표가 된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날 때도 있다. 난 잘 살고 있는가. 잘 늙고 있는가. 앞으로 난 괜찮을까, 하고.


“그냥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떠나보면 그리고 걷다 보면 이 심란한 마음들이 좀 가라앉을까 싶어 여행을 갔었다. 거기서 자신의 하루를 즐겁게 살아내는 낯선 사람들을 만났다. 당신은 여태 잘 살아왔군요, 하고 그들은 내게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던 작은 일탈은 사람들 틈에서 힘을 얻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했다. 아, 나는 이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행복하구나, 결국 사람이구나, 하고.


“가슴에 당신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라. 힘들 때, 어려울 때 마음속에 자신이 만든 그 고요한 길을 혼자 걸어보는 것, 진정 길을 갈 줄 아는 자다.” 서명숙,『서귀포를 아시나요』


나만의 고요한 길을 찾고 싶다. 그 길을 찾아내는 것이 결국 삶의 이유다. 행복으로 들뜰 때도 있지만 여전히 미생인 난 다시 질투의 화신이 될 것이다. 계속해서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거기에 미치지 못해 번뇌도 할 것이다. 그래도 자신할 수 있는 건 침잠해 있다가도 하루 행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씩은 분명히 할 거라는 것이다. 나의 화초들을 어여삐 돌볼 것이고 계절이 주는 선물을 두 발로 즐길 것이며 그때마다 우연히도 내게 찾아온 책을 읽을 것이다. 거기서 발견한 인생 문장을 기록도 할 것이며 나만의 두서없는 글도 쓰게 될 것이다.


“지나친 측정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잊지 마세요. 때로는 삶의 기쁨을 빼앗아 간다는 사실도요.” 권정민,『당신을 측정해 드립니다』


때론 측정 없이 감정을 비우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길에서 만난 낯설고도 다정한 이가 해준 말, 오늘만 행복하게 살아보라는 것처럼. 나이가 들더라도 프로스트의 숲 속 두 갈래 길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나이 듦이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여전히 타지만 자신만의 고요한 길을 꾹꾹 밟으며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젠 저울에서 내려올 때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