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내로 떠나야 해

by Traveler J



신기하게도 업무 메일 체크하듯 수시로 들여다보던 캐나다 워홀카페에 마침 12월 중순 ~ 말에 묵을 사람을 찾는 몬트리올 단기숙박 글이 올라왔다.


밴쿠버, 토론토 관련 글은 하루에도 수 개에서 수십 개가 올라오는 데 반해, 몬트리올 관련 글은 1년에 몇 개가 전부다. 그러니 때맞춰 올라온 이 글이 몬트리올로 가라는 계시같이 느껴진 게 큰 무리도 아니었을 거다.



그 당시가 11월 중순이었으니 한 달 내로 바쁘게 떠나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나는 그 글에 적혀있는 오픈카톡방에 문의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워홀 카페 글 보고 문의드립니다. 혹시 방이 아직 남아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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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직 가능합니다."


이로써 길지도 않았던 나의 갈팡질팡이 깔끔하게 끝이 났다.

몬트리올에 있는 회사에 지원을 하고 있던 것도, 집이나 비행기를 알아본 것도 아니면서 겨우 단기숙박 구한 걸로 대대적인 이사를 결정하다니. 대책이 없는 건지 배짱이 좋은 건지.


아무튼 난 한 달 안에 출국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숙소는 구해졌겠다. 잡은 어떻게 하지?


일단 링크드인을 처음 켜 프로필을 작성했다. 초라한 나의 이력이 한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주니어에서 끊긴 나의 짧은 첫 회사생활이 그제야 아쉽게 느껴지는 듯했다.

취업사이트에서도 구인공고를 찾아보았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 번역과 영어 티칭의 경력을 살려 현지 어학원 행정직에 넣어보았다. 회사에도 지원하고 싶었지만 불어를 요하는 곳이 많아 자격조차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서류도 넣어보지 않았다.


지난 몇 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닐 텐데 내세울 것도 없었다.






좌우지간 불어는 배우면 되고 고민할 시간은 없고 가야 했다. 난 간다. 난 간다.


숙소 입실일에 맞춰 비행기 표를 찾고 입국심사에서 보여주어야 할 서류를 재확인하고 필요할 것들을 사 모으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이왕 짐을 싸는 김에 옷을 한 뭉텅이 버렸다. 속이 다 시원했다.

살아남은 나머지는 깡그리 챙겼다.


엄마가 말했다. "아예 가려고?"


그렇다. 겨우 1년짜리 비자를 들고 가면서 왠지 모르게 나는 마치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러게. 아예 가려나?' 혼자 생각했다.



주인 없이 남겨질 다른 짐들은 공들여 잘 정리했다. 버릴 건 버리고.

정리를 위한 정리. 끝나야 끝나는 청소.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고 깔끔해진 방을 돌아보며 기분이 좋았다.






잔고증명, 워홀 인비테이션 레터나 컨펌 레터, 여행자 보험 서류들을 반딱이는 새 클리어 파일에 담아 준비했다.


올리브영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맞아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바쁜 와중에 약속을 잡아 봐야 할 얼굴들을 보았다. 대뜸 한 달도 남지 않은 출국일을 알려주면서.






그러던 어느 날, 잡 공고가 올라왔다.

몬트리올에서 3시간 거리의 시골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고 했다. 한국의 철강 대기업이 참여하는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다. 현지 엔지니어들과의 통역이 주 업무였다.


자신이 있으면서 자신이 없었다.

몬트리올도 어떤지 모르는 와중에 가자마자 시골로 가야 한다는 것. 업계 용어도 모르는 데 혼자, 바로 투입된다는 것. 억양이 강한 퀘벡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영어를 순탄하게 통역할 수 있을까. 회화를 한참 쉬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시험공부를 하지 못한 채 시험에 임하는 학생처럼 실전도 전에 한껏 쫄았다.


그러면서도, '뭐 얼마나 어렵겠어. 용어야 배우면 되는 거고 경험과 경력이라면 밀리지 않잖아.' 하는 생각이 번갈아 들었다.



급히 구하는 자리라 그런지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문자를 보냈고 회신에 적힌 이메일 주소로 이력서를 보냈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인생의 중요한 지점이 될 기회 앞에 선 것 같았다.



묘한 기분의 날들이었다.

추운 겨울 먼 길을 떠나는 사람 같았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