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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er J Jan 07. 2023

성수 카페 BNHR

이런.. 미국이 생각나버렸다


나는 주기적으로 놀러 가는 동네를 바꿔줘야 하는데 성수는 꽤 오랜 시간 (지난 몇 년) 나름 꾸준히 가고 있다. 어느 곳이건 매력과 아쉬운 점이 있지만, 성수는 권태로움을 덜 느끼는 동네라서 계속 찾게 되는 것 같다.


권태로움은 굉장히 주관적인데, 사실 그냥 찰나의 느낌이다.


오랜만에 들뜬 기분으로 놀러 간 곳이어도 지저분한 골목이나 정신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 같은 것들에 금방 질려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자주 가는 곳임에도 새로운 골목,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발견하며 더 흥미로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찰나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인상이 모여 그 구역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너무 즐거웠어. 또 와야지 ‘

’아. 이제 여기도 아니다.’


맛집이나 카페, 구경거리가 많은 소품샵/편집샵, 멋진 공원이나 산책길처럼 동네만의 강점은 다르지만 나를 그곳으로 다시 끌고 가는 건, 많은 경우 의미 있던 시간에 대한 기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로플을 맛있게 먹었던 BNHR.


칸막이나 굽어진 공간은 하나도 없는 정직한 네모 공간에 열 맞춰 주욱 깔린 테이블들. 층고도 높은 것이 미국 카페테리아 같은 인상이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의 맨 얼굴이 보이는 탁 트인 공간이 편하지 않아 평소라면 지체 없이 뒤돌아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노랑 빨강 원색으로 알록달록한 이 카페테리아에선 무언가에 홀린 듯 자리를 찾아 앉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멀찍이 자리를 잡았는데도 우리가 앉은 곳까지 은은한 커피 향이 돌았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면 아침 첫 수업 전 들른 교내 카페가 펼쳐질 것 같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베이글이나 샌드위치 한 개를 주문하고 아직 졸린 표정으로 멍하니 기다리는 내 모습이 보인다.


'Aww.. 여기 미국 같지 않아?!' 갑자기 영어 감탄사를 남발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항상 하는 말이다.


나는 미국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라면 쉽게 흥분한다. 누가 보면 학창 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줄 알겠지만, 1년의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행복해서 미국 비슷한 것만 봐도 난리가 난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미국 얘기’가 시작되었다. 이 카페와 비슷했던 학생식당에 대한 묘사부터 시작해 그 학생식당에서 매일 먹던 점심의 추억이라던가, 촌스럽지만 미국스러운 색으로 꾸민 공항, 도서관 등에 대해서.

학교에서, 타 도시에서, 홀리데이 때, 여행할 때의 에피소드들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각자의 추억이었지만 유학생 신분이었던 적 있는 이라면 쉽게 공감할만한 이야기들이었다.


크로플을 먹자 했다. 왠지 기분이 좋아 달달구리도 먹고 싶었다. 둘 다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었지만 합의까지는 1초도 안 걸렸다.


"야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다."

"당연하지. 내일부터 뭐 먹자고 절대 하지 마라."


작심삼일의 다짐을 한 번 더 하고 신나는 발걸음보다 더 신나는 엉덩이로 주문을 하러 갔다.


꽤 기다려 크로플을 받았다. 달달한 향이 났다. 바사삭. 아주 잘 구워졌다.

메이플 시럽을 붓고 시나몬 파우더가 뿌려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칼로 잘라내 아직 따뜻한 크로플과 한 입 했다.


"와!!... 야!"


대뜸 소리만 지르고 어이없다는 듯 동공을 키운 채 날숨에 코평수를 한 번 넓혔다. 약간 화난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진실의 미간이라 하지 않은가. 어떻게든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욕심이었다. 친구는 오버한다며 피식 웃더니 본인의 크로플을 서둘러 썰었다.


"와!!"

"ㅋㅋㅋㅋㅋㅋ내가 말했지. 이거 미쳤어."


뿌듯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입술에 반짝이는 시럽과 아이스크림을 묻히고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눈을 마주치며 웃는 일은 언제나 좋지만 특히 짜릿할 때가 있다. 이 날이 그랬다.


공감이 뭐라고. 우리는 하루 종일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공감하며 즐거움을 나누고 있었다. MBTI니 뭐니 하도 공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때로는 공감을 강요받는다고 느끼는 요즘이기도 한데, 어쨌거나 저쨌거나 감정과 정서의 공유는, 그리고 진심의 공감은 확실히 큰 힘이 있었다. 각각 서 있는 사람들을 어떤 유대감으로 묶어주는 느낌이랄까. 알던 사실을 한 번 더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친구 입에 묻은 시럽은 딱 봐도 찐득해 보였다. 아직도 웃음기 가득한 친구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귀여워. 우리도 이렇게 더 진득한 사이가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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