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카와와 친구들

by 옥돌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친구가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이사 하고 한 달의 시간이 흐른 뒤,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었다. 친구는 강아지와 바닷가 부두를 산책하는 사진과 밤바다 옆에 가지런히 놓인 치킨X맥주 사진을 보내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시니컬하게 받아치기도 했다. 아마, 일 년 버티고 다시 서울로 올 걸?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는데 거기서 어떻게 살아. 돈은 어떻게 벌어. 하지만 가봐야 아는 일이다. 우리는 그녀가 제주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 알 수가 없다. 의외로 제주에서 오래 머물지도 모른다.




아빠도 그랬다. 아빠는 내가 첫 돌이었던 해, 시골의 다 쓰러져 가는 폐가 한 채를 구입했다. 가로등도 없는 곳이라 그 집 마루에 달린 전구를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칠흙 같은 어둠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 가끔 주말이면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화장실도 없는 시골집으로 갔다. 그 집을 생각하면 갈 때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꼬부려 앉아 세수하던 엄마 앞으로 쉭쉭 지나가던 살모사의 움직임, 처마밑에 달린 벌집, 벌에 쏘인 동생에게 된장을 찍어 바르던 아빠의 손 같은 이미지가 뒤죽박죽 떠오른다.


이제 퇴직한 아빠는 <주말엔 숲으로>에 나온 하야카와처럼 도시를 떠났다. 아빠는 혼자 살지만 혼자가 아니다. 산새들의 모이도 챙겨야 하고 가끔 마을 고양이들에게 먹이도 준다. 들깨, 머위, 석류나무, 갓 심은 배추와 무우도 돌봐야 한다. 아빠의 도시 친구들은 묻는다. 불편하지 않냐고. 혹은 놀러와 뒷짐 지고 집을 스윽, 한 바퀴 둘러보며 말한다. "좋긴 좋은데. 난 이렇게는 못살 것 같아."


<주말엔 숲으로>의 하야카와는 인터넷으로 농산물을 주문해 먹는다.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딸깍딸깍 마우스를 클릭하며 우체국쇼핑을 하던 아빠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빠는 햇밤과 제주의 옥돔, 냉동갈치 같은 마을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물품들을 주문하고, 택배아저씨기 상자를 가져오면 이 먼데까지도 택배가 온다며 좋아했다. 조그만 텃밭을 가꾸긴 하지만 텃밭에 없거나 망친 농산물(올해는 고구마)은 인터넷으로 주문해 먹는다.


시골에 산다고 하여 꼭 농사를 지으라는 법은 없다. 하야카와처럼 번역을 하고 문화센터의 강사로 일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건 도시에 비해 어려울 지도 모른다. 선택의 폭도 좁아진다. 만약 한적한 시골, 혹은 작은 소도시에서 산다면, 난 무엇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그건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친구와 주말에 오래된 절로 소풍을 갔다. 도시에 오래 있으면 소풍가는 법을 잊어버린다. 프랜차이즈 김밥 집에서 김밥을 사고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 2권을 챙겼다. 돗자리를 펴고 우리보다 몇 백년 더 오래 살아온 나무들 아래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나뭇잎에 살랑거리는 것도 보고 오랜만에 바람소리도 들었다. <주말엔 숲으로>와 <너의 곁에서>에 나오는 삼총사처럼. 친구들은 숲과 나무를 좋아한다. 우리는 쿵짝이 잘 맞는 편이다. 어려서 부터 자연을 잘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아빠, 우리가 이토록 오래 만난 것, 함께 소풍을 갈 수 있는 것, 모두 감사히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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