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감별사

by 감 있는

막내로 태어났다.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언니와 다섯 살 많은 오빠가 있다. 사진첩에 부모님과 언니, 오빠 네 식구가 찍힌 사진을 보면 완벽한 가족 구성처럼 보였다. 난 어쩌다 태어났을까. 엄마는 “오빠가 하도 어리광부려서 널 낳았어. 오빠에게 고마워해라”라며 깔깔 웃으셨다. 몇 번을 물어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탄생 비화를 알려주었다. 존재 이유를 알면 모든 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힘으로는 시작점을 모르는 미로에 갇힌 것 같았다. 마치 있어도 없어도 되는 깍두기처럼.

기억이 가물가물 시작되는 무렵, 언니와 오빠는 학교에 가고 없었다. 빈방에 눈을 뜨면 적막함이 공기를 덮고 있었다. 저 멀리 엄마가 빨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맏며느리인 엄마는 당시 삼촌들, 고모들을 데리고 사느라 끝도 없는 집안일로 무척 바쁘셨다. 언니와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가 일하는 모습 우두커니 구경하기, 파리채로 파리 잡기, 옥상에 올라가서 마음대로 노래 부르기, 옆집 기와에 올라타 기차 놀이하기. 그래도 심심하면 정 할 수 없기. 정말 심심했다.


외롭기만 한 내 인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살려고 태어났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가족들이 연극을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화장실 가거나, 잠을 자거나, 나 혼자 남겨진 시간에 모두가 대본을 읽고 외운다고 생각했다. 연속극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연기하느라 바쁜 거라고, 언젠가 진정 나를 놀라게 해줄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었다.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펼쳐진 현실은 진짜가 아닙니다.” 마이크를 쥔 리포터와 카메라맨이 달려와서 이제 끝났다고 손을 휘휘 내저을 것 같았다. 모두 거짓말이었으니 돌아가라고 말해줄 것만 같았다. 그땐 세상 끝에서 어디로 가야 하지? 그들에게 뒤돌아서서 묻고 싶었다.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우주에 떠도는 외떨어진 소행성이 내 고향이 아닐까 상상했다. 외로울 때 44번이나 의자를 뒤로 젖혀 노을을 보았다는 어린 왕자와 같이 있고 싶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으며 펑펑 울다가 제제처럼 나만의 나무를 찾느라 거리를 헤맸다. 차가 쌩쌩 달리는 가로수에 있는 나무들이 다정해 보이지 않았다. 왜 나는 누군가의 눈을 마주치고 얘기할 수 없을까. 깡충깡충 뛰어올라서라도 가족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귀찮은 막내. 할 일 없는 날은 방을 빙글빙글 돌았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 눈에 보인다는 말. 정말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소외된 사람이 눈에 밟혔다. 외로운 이들과 손길만 스쳐도 전기에 감전되듯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파도가 밀려드는 스산함. 폭포가 떨어지는 으스스함. 외로움의 깊이에 따라 심장까지 후벼 파고드는 차가운 핏줄이 온몸에 퍼졌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팔뚝에는 닭살이 일었다. 외로움을 알아보는 능력은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 내 영혼의 두께가 얇다는 증거. 아마 나 같은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외로움을 알아보는 게 항상 맞는 건 아닐 테지만 아무리 환하게 웃고 있어도 외로운 사람이 있다. 또 울적해 보여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외로움이 내가 알아차려도 될 만한, 안심해도 된다는 상황에서만 열어지고 허락되었다. 외로움이 느껴질 때마다 네가 외롭구나, 다가서려고 해도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말없이 옆에 있어 주는 일. 내가 그토록 바랐던 눈망울을 들여다보는 일. 그리고 기도하는 일.


외로운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누군가의 외로움이 느껴질 때면 어찌할 바 모르겠다. 무심하게 함께하고, 은근히 생각하지만 해결해줄 수 없음에 종종 말문이 막힌다. 혼자 남겨진 거 같은 고단함. 사랑받고 싶은 고독감. 한 가지 분명한 건 외로운 사람이 모이면 더 외로워지기보다 덜 외로워진다. 그래서 내가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네가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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