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이 숨죽이는 시간

by 감 있는

아들이 강낭콩을 가져왔다. 강낭콩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일지로 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반지르르하고 얼룩덜룩한 강낭콩을 보는 순간 멈칫했다. 어린 시절 나에게도 강낭콩 심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봄볕이 드는 교실, 흙을 우유 팩에 담고 강낭콩을 심었다. 창가에 강낭콩을 올려두었다.


며칠이 지났다. 똑같은 환경에서 심었던 강낭콩은 차이가 있었다. 친구들의 강낭콩은 초록 떡잎이 흙을 박차며 고개를 들었다. 줄기는 넝쿨이 질 정도로 쑥쑥 자랐다. 내가 심은 강낭콩은 아무런 미동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강낭콩에 아이들의 환호성이 커지는 만큼 난 애가 탔다. 똑같은 우유 팩과 흙, 물, 공기, 햇살. 도대체 무슨 차이였을까. 내가 심은 강낭콩은 쭉정이였을까. 아니면 꼭꼭 묻어두지 않은 걸까. 혹은 너무 깊이 넣은 걸까. 운이 없는 건지, 무엇이 부족한 건지 세상에 알 수 없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강낭콩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자란 엄마는 집안일 하느라 마음껏 공부하지 못했다. 나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냈다. 그것이 엄마의 자랑, 자부심이었다. 90년대에 교복, 급식, 스키캠프 등 학교에서 누릴 수 있었던 초호화 생활은 나에게 부담스럽고 버거웠다. 강남권 아이들이 다니는 귀족학교에 강북 아이가 다닌다는 것. 스쿨버스로 등하교를 하지만 집에는 자가용이 없다는 것.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침대와 양문 냉장고가 있지만 내가 사는 집은 쓰러져 가는 한옥이라는 것. 열두 시가 되면 재투성이로 변하는 신데렐라처럼 내가 지닌 것이 누더기로 밝혀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나는 왜 나일까. 저 아이가 아니라 왜 나일까. 수학을 잘하는 아이, 플루트나 바이올린, 피아노 등 음악에 소질 있는 아이, 영어로 말하는 아이. 애써 못 본 척해도 아이들의 재능은 튀었다. 교실 안, 보이지 않는 레이스에서 날고뛰는 아이들을 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성적에 따라 차별이 있다는 것과 부모의 직업과 재산에 따라 선생님의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학교는 감옥 같았다. 네모난 건물 안에서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다. 숨 쉬는 것만으로 자존심이 상하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공부도 못하고, 노래도 못 하고, 키도 작고, 얼굴도 예쁘지 않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아이. 부모님은 아침마다 돈으로 싸우셨다. 등록금 고지서를 내밀 때마다 내가 돈 덩어리 같았다. 비싼 학교에 다닌다고 실력이 절로 생기는 건 아니었다. 큰돈을 들여서 학교를 보냈을 뿐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떠한 재능과 보상으로 부모님과 선생님을,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싹을 틔우지 못한 강낭콩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운이 나빴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부족했던 것일까.


졸업식 날 참 많이 울었다. 숨 막히던 6년의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이,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누군가의 발에 자근자근 짓밟힌 거 같은 서글픔이, 태생이 다른 고상함을 가진 아이들이 너무나 부대껴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도 다르지 않았다. 성적순으로 자리가 정해졌다. 꿈이 없던 나는 공부를 잘한 적도, 못한 적도 없는 중간에 맴도는 아이였다. 나도 무언가 잘하고, 잘 해내고 싶었다. 특기란에 자신 있게 하나쯤은 쓰고 싶었다. 내가 가진 기술은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편지를 쓰는 마음인데 내세우기에는 하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점수에 맞춰 대학교에 들어갔다. 2년이 지나고 휴학했다. 꿈이 없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 삶이 살아지는 건 아니었다. 날 것의 나를 마주한다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몸부림을 치면서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난 목적에 대해 처음으로 물었다. 성적, 성공, 돈의 결과로 등급을 나누던 세상으로부터 내가 처음으로 멈추는 시간이었다.

<살인의 추억> 영화를 보던 중, 무언가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는 기분이 들었다. 스토리가 주는 힘에 난 며칠 몸살을 앓았다. 또 어느 날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연극을 보고 다섯 정거장이면 도착하는 집을 지나치고 헤매었다. 메시지가 숫자보다 더 크다고 느껴졌다. 나는 경영학부에서 인문학부로 전과했다. 한결 정직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 삶에 대안이 되거나 큰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중간한 실력으로 돈을 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난 능력 있는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들에게 강낭콩 한 알은 내가 심고 싶다고 했다. 삼십 년 전, 학교에서 강낭콩을 기다리던 아이가 용기 내어 부탁했다. 아들이 알려준 대로 화분에 흙을 가득 담고 강낭콩 위에 흙을 살포시 두었다. 강낭콩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 그 길이 멀고 버겁고 무겁지 않도록. 설사 강낭콩이 싹을 틔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심정이었지만 또다시 겁이 났다. 며칠이 지났다. 단단한 떡잎이 삐죽 터져 나왔다. 어린아이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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