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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Nov 23. 2020

시인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

나태주 시인을 만나다


이름조차 시인의 감성이 묻어나는 나태주 시인. ‘시인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동네 도서관에 나태주 시인이 나타났다. 아침 일찍 충청남도 공주에서 올라오신다는 얘기를 건네 듣고, 나는 아이들에게 도서관에 가자고 재촉했다. 일곱 살 아이는 별로 내키지 않는 듯 뜸 들이다 묻는다.


아이     시인이 뭐야?

엄마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 우리는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아름답게 보는 눈을 잃어버렸어.

             시인은 그걸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이야.     


엄마의 설명에 알듯말듯 아이들은 갸우뚱거린다. 성화에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는다. 나는 얼른 미역국 한 사발 밥을 말아 푹푹 떠 먹고 나갈 채비를 하다 문득 거울을 봤다.


엄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갛지?

아이     엄마가 반했나 봐.

엄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시인의 마음 같아.   


뜨거운 미역국을 서둘러 먹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건데 아이가 씨익 웃으면서 말해준다. 생각지 못한 아이 답변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도서관을 가는 동안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읊어주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아이들에게 말해주다 보니 도서관에 금방 도착한다. 나태주 시인은 풍채 좋은 할아버지였다. 연애편지를 쓰다가 시를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43년간 선생님으로 교직 생활을 하시면서 자식도 안 예쁠 때가 있는데 학생들이 예뻤겠냐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정년퇴직하던 해에 그 유명한 ‘풀꽃’이라는 시를 쓰셨다고 했다. 대부분 시에는 자연이 담겨 있었다.


시는 마치 ‘사람들의 감정을 돌보는 서비스’ 같은 거라고 말씀하셨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외롭고 힘든 시기여서 시인이 멀리서 여기까지 오신 이유라고 하셨다. 다들 푹 빠져서 강연을 듣고 있는데 아이들이 지루함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를 데려온 사람은 나밖에 없다. 단군신화에 인간이 되려고 굴 속에 있던 호랑이처럼 첫째는 뛰쳐나갔고, 둘째는 곰처럼 쑥과 마늘 대신 사탕을 먹으며 자리를 지켰다. 오기 전에 시인에 대해 나누어서 그런지 비교적 집중하다 잠이 들었다. 둘째가 부디 시인으로 태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을 거라 믿고 싶다.

  

강연에 이어 낭독, 음악회 등 가을 감성에 맞는 행사를 마쳤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시를 나누었다.


엄마        풀꽃 시 들었지? 근데 이상해.

                잠깐 봐도 이렇게 예쁜데.

                슬쩍 봐도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너희들은 그래.      


엄마의 마음에 아이들은 기분 좋아서 팔랑팔랑 뛰어다닌다. 단풍잎은 마치 우주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별이 우수수 쏟아진 거 같다. 파랗고 청량한 하늘, 농도 짙은 물감이 흐트러지고, 새어 나온 낙엽들. 아름다워서 반한다. 내 얼굴도 빨갛게 물들었다. 가을이 깊어간다.



지구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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