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 있는 Mar 08. 2024

그림책 <첫 번째 질문>

어떤 이가 길을 걷다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무엇이에요?”라고 나를 붙잡고 묻는다면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내 마음 깊은 곳에 꼬깃꼬깃한 갱지 시험지를 꺼내 그곳에 쓰여 있는 질문을 단박에 읽어줄 것이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 중 텔레비전의 화면이 더 환하게 보이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이게 첫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이거예요. 설거지할 때 기름기가 있는 것부터 씻을까요, 아니면 기름기가 없는 것부터 씻어야 할까요?”

  

지나가던 까마귀도 어이없다는 듯 깍깍거릴 뜬금없는 소리겠지. 먼저 이 질문의 출처는 초등학교 시절 시험지의 일부분이고, 난 안타깝게도 두 문제 다 맞히지 못했다. 당시에 문제를 마주하며 나름 고심했다. ‘텔레비전을 볼 때 보통 등을 켜고 보잖아? 게다가 설거지할 때는, 먼저 하기 힘든 것부터 해치우는 게 낫지. 기름기가 있으면 다른 것까지 얼룩지게 둘 수는 없으니까’라고 나름 합리적인 판단으로 다른 건 틀려도 이건 맞겠지라며 자신 있게 썼다.


뿌옇고 바래진 기억들 속에서 그 장면은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채점된 시험지를 들고 엄마에게 들고 가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난 시험지에 부모님 사인받아오라는 날만 되면 울었다. 반타작 겨우 넘은 점수를 보고 엄마는 야단을 치다가 이 문제의 지문을 따라 읽고는 답을 풀어주었다.


“잘 생각해 봐. 환할 때보다 깜깜할 때 텔레비전이 더 잘 보이지 않겠니? 어두운 곳에서는 눈이 부실 만큼 빛이 세잖아. 그리고 설거지는 기름기가 없는 것부터 해야지.”


과학 시험이었을까 상식 시험이었을까. 이런 도 모르냐는 핀잔을 들으며 내가 이제껏 아는 세상과 시험문제의 답이 다르다는 것에 혼란스러웠다. 정답은 정해져 있으니 답에 나를 맞출 수밖에. 텔레비전은 깜깜한 곳에서 더 환하게 비추고, 설거지는 기름기 없는 것부터. 하지만 그 질문의 해답은 오랫동안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그래, 설거지는 기름기 없는 것부터 하는 게 효율적이긴 하지. 기름이 섞이지 않으려면. 하지만 기름기가 있는 그릇을 먼저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오늘처럼 말이야. 아니 TV를 켜면 환한 곳에서 봐야 눈도 안 아프고 더 잘 보이는 거 아닌가. 어두운 곳에서는 TV를 보면 답답해서 머리 아프던데’라는 나의 쓸데없지만 이유 있는 항변.


내가 만약 이 문제들을 맞혔더라면 아주 개운하게 잊어버렸을 텐데, 아니 틀렸던 문제가 이거 말고도 수두룩 빽빽한데 왜 이 질문들이 여지껏 따라다닌 것인지 뒤끝 있는 나만의 대답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시험지에는 오답을 정답으로 수정했지만 마음까지는 동의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배운 답은 하나였지만 살면서 얻어가는 답은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고 일반적인 답을 요구하기보다 내가 겪고 있는 세상은 훨씬 복잡하고 여러 대안이 있으니까.


그 밖에도 기억이 나는 질문이 있다. 고등학교 첫 국어 시간, 시인의 분위기가 물씬 나던 선생님은 갑자기 “‘노랑’ 하면 떠오르는 게 뭐니?”라고 물으셨다. 반 아이들이 아무 대답이 없자 선생님이 출석부의 이름을 한참 보시더니 나를 호명하셨다. 특별한 대답이 나올 거라 확신에 찬 얼굴로.


기대에 찬 선생님의 얼굴에 부응하고 싶었으나 나는 아무리 떠올려도 ‘노랑은 노랑이지’라며 딱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침묵 끝에 “개나리요”라고 싱겁게 대답하고 말았다. 선생님은 진부한 대답이 마음에 안 들다는 듯 다른 아이들을 지목하기 시작했다. 그때 선생님이 원했던 노랑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내게 다시 묻는다면 노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며 아이의 귓등에 꽂은 개나리가 생각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개나리 속에 숨겨진 노란 햇살도 보인다고 말할 것이다. 개나리가 물가에 툭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는데 햇살 한 조각인지, 노란 나비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더라고 말하고 싶다. 노오란 노을이 하늘과 대지를 적시면 내 눈도 개나리처럼 빛이 나는 것만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것 또한 충분한 대답은 아닐 테지만.


길을 걷다 문제를 출제했던 선생님을 우연히 만난다면 나는 그 질문 앞에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고 전하고 싶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까지 그 답을 이해하지 못해도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내게는 중요한 질문이 되었는데 아직도 완벽하지 않은 해답이 여전히 맴돈다고 말이다. 나만의 답은 더디지만 지금도 찾아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책 <매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